레코드와 우리는 Records in Daegu (2) | 유지성

13년째 대중문화를 기록해온 피처 에디터, 그리고 하우스를 비롯한 음악을 제약 없이 탐구하는 디제이∙프로듀서 유지성이 대구의 클럽, 댄스, 바이널 음악 신을 전합니다. 무대의 관찰자이면서 참여자인 그의 시선을 빌려 대구의 음악을 더 흥미롭게 들여다보세요.

레코드와 우리는 Records in Daegu (2) | 유지성

레코드와 우리는 Records in Daegu (2) | 유지성

13년째 대중문화를 기록해온 피처 에디터, 그리고 하우스를 비롯한 음악을 제약 없이 탐구하는 디제이∙프로듀서 유지성이 대구의 클럽, 댄스, 바이널 음악 신을 전합니다. 무대의 관찰자이면서 참여자인 그의 시선을 빌려 대구의 음악을 더 흥미롭게 들여다보세요.

레코드를 사는 사람들은 종종 낚시하듯 ‘손맛’에 대해 말하곤 한다. 그렇게 레코드는 무게와 형태가 확실한 물건이고, 그렇기에 내가 사는 곳, 손에 닿는 거리에서 레코드를 직접 만지거나 볼 수 있는 경험이 그 매체를 대하기에 더 제격이다. 대구에서 레코드를 만들고, 판매하고, 그것으로 음악을 트는 사람들을 만났다.

JAMES RECORD

2016년 문을 연 제임스레코드에서는 레코드 가게가 주요한 배경이 되는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음반 가게를 꿈꾸며 어릴 적부터 생각해둔 이름이에요. 믹스 테이프를 녹음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그랬던 때죠. ‘제임스레코드’라고 딱 적어서.” 그때부터 제임스레코드는 어쩌면 DIY 레이블이었을 것이다. 바 제임스레코드를 경영하는 그는 2020년부터 동명의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다. “원래는 한 장만 만들고 그만하려고 했는데, 첫 음반을 내고 나니까 욕심이 생겼어요.” 컴필레이션 음반 <Everyday James>로 출발한 레이블 제임스레코드는 불과 3년여 동안 음반 13장을 발매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로파이lo-fi * 계열 사운드, 개러지garage**, 슈게이징shoegazing*** 등의 장르를 주로 다룬다. “<Everyday James>는 어쩌다 보니 경상권 아티스트 위주가 됐는데, 두 번째 컴필레이션 음반 <The Time Limit is Over>는 의도가 있었어요. 이 지역에도 이렇게 다양한 밴드가 있고, 그 팀들을 알리고 싶다는.”

* ‘low fidelity’의 약자로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를 구현해내는 음악
** 미국에서 출발한, 집에 딸린 차고를 뜻하는 ‘개러지’가 장르명이 된 록 음악
*** 몽환적 사운드 질감과 디스토션을 비롯한 이펙트의 적극적 사용이 특징인 인디 록의 흐름 중 하나

<Everyday James>는 어쩌다 보니
경상권 아티스트 위주가 됐는데,

두 번째 컴필레이션 음반
<The Time Limit is Over>는 의도가 있었어요.

이 지역에도 이렇게 다양한 밴드가 있고,
그 팀들을 알리고 싶다는.

대구 출신 황재원 대표에게 대구는 이른바 ‘마창진’, 현재의 창원을 비롯한 경남과 경북 곳곳을 잇는 지역 허브에 가까운 역할을 한다. 바 제임스레코드를 그 본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한테 세뇌를 시키는 거죠. 야금야금 들려주면서 말이에요. 테스트 프레스* 나오면 주구장창 틀어요.” 공연기획자기도 한 그가 기획하는 공연 중 일부가 바 제임스레코드에서 열리기도 한다. “제가 좋아하는 팀이니까, 실패해도 아깝지 않아요. 레이블에서 내는 앨범도 마찬가지죠.” 그 자신이 좋아서 기획한 무대에 선 아티스트의 음반이 레이블 제임스레코드를 통해 발매된다. 그리고 바 제임스레코드에서 그 음악이 나온다. 황재원이 대구를 중심으로 꾸민 음악 생태계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꼭 거창할 필요는 없거든요. 그렇게 소규모 레이블이 많이 생겼으면 해요. 더불어 공연 문화도 활성화되고요.”

* 음반을 정식 발매하기 전 시험 제작하는 바이닐.

YOUNG RECORDS

영레코드는 그 이름처럼 젊다. 1990년대에 젊음을 보낸 정규영 대표는 레코드가 저물던 시절 본격적으로 레코드를 찾았다. “1994~1995년쯤 레코드 생산이 끊기면서 대구 시내에 작은 LP 가게가 몇 개 생겼어요. 생각해보면 그때 가게를 연 분들은 LP의 생명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음악과의 만남은 그보다 일렀다. “중학교 때 테이프 녹음을 맡기던 곳 이름이 영소리사인가, 그랬어요. 좋아하는 곡을 적어주면 녹음해 테이프로 만들어줬죠.” 정규영의 영, 그리고 영소리사의 영이 지금의 레코드 가게명이 됐다. “8년 전쯤, 빈티지 오디오 수리를 하는 지인 가게에 놀러 갔다가 다시 확 욕심이 생겼어요.” 거기서 본 턴테이블이라는 익숙하지만 낯선 기기의 매력이 레코드 수집의 새로운 동력이었다. 그렇게 개인 컬렉터로서 모아온 수천 장의 레코드로 그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 영레코드를 열었다.

1994~1995년쯤 레코드 생산이 끊기면서

대구 시내에 작은 LP 가게가 몇 개 생겼어요.

생각해보면 그때 가게를 연 분들은
LP의 생명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아무래도 비트 있고 그루비한 소울이나 훵크가 많죠. 매드체스터 사운드나 뉴웨이브처럼 왠지 한창때 한국에서 주목받지 못한 쪽도 소개하고 싶고··· 젊을 때부터 리듬 있는 음악을 좋아했어요.” 입구에 듀스의 <DEUX FOREVER> 포스터가 큼지막하게 붙은 이곳은 듀스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재조명되듯, 현재진행형의 모습을 띤다. “요즘은 예전에 안 듣던 장르를 많이 접해요. 제가 많이 알아야 좋은 레코드를 입고할 수 있으니까. 물론 음악 공부도 되고요.” 배움의 의지는 손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영레코드는 오래된 음반과 함께하는 어제만큼이나 내일을 본다. “만약 제가 이걸 안 했으면 과거에 젖어 똑같은 음악을 듣고 있었을 거예요. 개인적으로도 음악 스펙트럼이 많이 넓어졌죠.” 대구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대구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가를 물었다. 장고 끝에 내린 그의 선택은 브라질의 재즈-훵크 밴드 아지무스. 1973년 데뷔한 아지무스는 여전히 무대에 오르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올해도 6월부터 유럽 투어길에 오른다. 현재진행형의 건재함으로.

DAON

다온은 Slowlife와 Sol, 두 디제이가 결성한 팀 이름이다. “같이 주고받으며 음악을 틀다 보니까 잘 맞더라고요. 각자의 분야 중간 어딘가에 통하는 지점이 있어요.” 순우리말 다온의 뜻을 담은 ‘All The Good Things Come To Everyone’이라는 팀 슬로건과 함께, 그들이 운영하는 믹스 플랫폼 다온 라디오 또한 막 개국을 알렸다. “커뮤니티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레코드 컬렉션도 소개하고, 파티도 열 거예요.” 넓은 공동체를 지향하는 그들의 ‘Good Thing’은 음악 그 자체보다 관계와 감정에 더 가깝다. “주체적으로 음악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정말 그 사랑이 느껴져요. 그런 친구들을 많이 소개하고 싶은 거예요.” 

사실 어디에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 것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거겠죠.

하지만 대구는 저희가 만나게 된,

시작점 같은 도시라는 의미는 확실히 있어요.

음악엔 정답이나 왕도가 없기에, 그 탐색과 몰두의 시간이 곧 기쁨이자 목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직선보다 곡선으로 그린, 정확히 맺고 끊기보다 흐르듯 이어지는 다온의 로고는 그 과정에서 인연 맺을 모두를 포용한다. “성별도 보이지 않았으면 했어요. 로고 속 그림을 보면 둘이 마주하고 있잖아요. 국적도, 배경도 서로 다른 모든 사람이 만나게 되는 거죠. 어떤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가 튼 음악과 함께 한순간에 연결되는 것처럼요.” 다온은 레코드를 고집하진 않지만, 레코드를 아끼고 레코드로 음악을 튼다. 정해진 속도로 회전하며 한곳에 머무르지만 바늘은 끊임없이 전진하는 레코드처럼, 그들은 자기 페이스대로 자연스럽게 공감과 쾌감을 전하고자 한다. “사실 어디에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 것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거겠죠. 하지만 대구는 저희가 만나게 된, 시작점 같은 도시라는 의미는 확실히 있어요.” 인정과 사랑. 실제 연인 사이기도 한 두 디제이가 탄생시킨 새로운 자아, 다온의 목적이자 바람이다.

Illustration | 바이닐이 된 대구.

**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외부 기고문은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시선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지성

2009년부터 <지큐 코리아GQ KOREA> 에디터, <플레이보이 코리아Playboy Korea>의 부편집장으로 일했다. 2018년 프리랜스 에디터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로는 ‘BUDXBEATS’, ‘Discogs’, ‘Red Bull Music’ 등을 비롯해 주로 여러 음악 관련 플랫폼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현재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및 한국 힙합 어워즈 선정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2022년 가을부터 <하입비스트 코리아HYPEBEAST KOREA>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추신 : 'Jesse You'를 구글링하면 디제이이자 프로듀서로서의 그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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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Mijin Yoo PhotographJooyoung Park IllustrationAnuj Shrest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