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누들 로드 대구 밥상 (2) | 박정배

탄탄한 사료를 기반으로 한 구성진 음식 이야기로 오랜 시간 독자와 만나온 칼럼니스트 박정배가 대구를 찾았습니다. 치킨과 분식, 붉은 국물과 내장까지 네 편의 연재로 대구 사람들의 밥상을 들여다봅니다. 잠시 숨을 고르세요. 읽는 것만으로도 얼큰하게 취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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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사료를 기반으로 한 구성진 음식 이야기로 오랜 시간 독자와 만나온 칼럼니스트 박정배가 대구를 찾았습니다. 치킨과 분식, 붉은 국물과 내장까지 네 편의 연재로 대구 사람들의 밥상을 들여다봅니다. 잠시 숨을 고르세요. 읽는 것만으로도 얼큰하게 취할지 모르니까요.

전국에서 가장 가뿐한 칼국수 한 그릇이 있는
분식 천국 대구

2022년 12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통계에 따르면 전국 칼국수 평균 가격은 7,893원이다. 15개 광역 자치단체 중 가장 비싼 지역은 경기도로 8,552원이고, 가장 싼 지역은 대구광역시로 6,500원이다. 이는 12월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2022년 한 해 동안 벌어진 현상이다. 대구의 칼국수 가격이 전국에서 가장 싼 이유는 대구의 공장제 면을 이용한 칼국수 문화에 기인한다. 칼국수 하면 떠오르는, 손으로 반죽한 밀가루를 칼로 썬 면보다 공장제 면을 사용하는 식당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유명한 식당은 공장에 자신의 레시피를 주고 만든 면을 받아 사용한다. 이런 국수를 ‘누른국수’ 혹은 ‘대구칼국수’, ‘누름국수’라고도 부른다. 대구의 국수 문화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소규모 생산업체인 국숫집이나 국수 공장에서 나온 반건면 혹은 건면을 이용해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간식으로 소비되었다. 그러다 1960년대 중반 국수 가게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손으로 만든 손국수와 공장제 누른국수가 공존하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대구 동곡할매손칼국수에서.

전국에서 칼국수가 가장 비싼 지역은 경기도로 8,552원이고,

가장 싼 지역은 대구광역시로 6,500원이다.

이는 12월만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고 2022년 한 해 동안 벌어진 현상이다.

풍국면과 삼성상회, 90년간 무르익은 제면업의 도시

대구에서 분식과 국수 문화가 발달한 첫 번째 이유는 지리적 이점에 있다. 제분 산업이 발달한 부산과 가까워 밀가루를 가공하기에 유리한 것. 둘째는 국수를 만드는 데 최적인 습기 적고 고온 건조한 날씨다. 최근 들어 녹화 사업 등으로 완화되고 있지만, 1931년부터 1960년대 대구 평균기온은 25.9℃로 높았다. 1940년 8월 1일, 대구의 관측 기온은 당시 최고인 40℃를 기록하기도 했다. 셋째는 안동·영주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 국수 문화다. 2015년 대구에는 국수 제조업체가 35곳 있었는데, 이는 제분업 중심지인 부산의 37곳, 인천의 34곳과 비교해볼 때 인구 대비 월등히 많은 수치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 제조업체인 풍국면(1933년)은 지금도 대구에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삼성그룹의 전신인 삼성상회의 ‘별표국수’(1938년), 닭표·곰표·소표·왕관·금성 등도 모두 대구에 있었다. 대구의 음식 역사 및 문화 전문가이자 이춘호 씨에 따르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국수 시장의 60% 이상을 대구가 독점했고, 특히 1950~1970년대 대구의 건면은 안동·봉화 등 경북 북부 반가에서 잔치 음식과 제수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대구의 면이 부드러운 건 안동을 중심으로 한 양반가의 국수가 콩국수를 밀가루와 섞어 부드럽게 만든 것에 기인한다.

대구의 이름 없는 칼국숫집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 제조업체인 풍국면(1933년)은 지금도 대구에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삼성의 전신인 삼성상회의 ‘별표국수’(1938년), 닭표·곰표·소표·왕관·금성 등도 모두 대구에 있었다.

‘엄마표’, ‘왕근이’, ‘금와식당’···
분식 장려 운동과 칼국수 르네상스

밀가루를 기반으로 한 분식은 1960년대 본격화된 분식 장려 운동으로 꽃을 피운다. 대구에서는 한국인의 전통 분식인 칼국수 문화가 정착하는데, 1960년대부터 ‘엄마표’·‘할매표’ 칼국숫집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현재 서문시장 국수촌에는 국수를 중심으로 한 분식집이 100여 군데 운영 중이다.

대구 서문시장의 칼국수 거리.

1960년 중반 서문시장 국수골목에 맨 먼저 자리 잡은 국숫집 ‘왕근이’는 현재는 서문시장을 벗어나 북구 구암동 ‘왕근이칼국수’로 이름을 바꿔 영업 중이다. 왕근이칼국수에서는 옛날칼국수와 왕근이칼국수 두 종류를 판다. 옛날칼국수는 면 삶은 물을 갈지 않고 그대로 육수로 사용하는 제물국수다. 그래서 국물이 탁하고 식감이 두텁다. 왕근이칼국수는 국수를 삶은 뒤 찬물에 씻어 내는 건진국수다. 옛날의 서민적인 제물국수에서 세련된 건진국수로의 변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 국물은 멸치를 우려 만든다. 

대구 금와식당의 차가운 삼겹 수육.

중구 동산동의 ‘금와식당’은 멸치 국물에 통일식품의 생면을 받아 사용한다. 청방배추를 넣어 국물 맛이 깔끔하다. 금와식당은 차가운 삼겹 수육으로도 유명하다. 대구의 칼국숫집들은 삼겹 수육과 더불어 암뽕돼지 자궁 수육을 많이 낸다. 신암동의 ‘태양칼국수’는 공장제 면발, 멸치 베이스의 제물국수, 암뽕 수육을 모두 맛볼 수 있는 노포다. 손으로 직접 뽑은 국수에 ‘할매표’ 손맛을 더한 달성군 ‘동곡원조할매손칼국수’, 명덕네거리 ‘할매집’도 잘 알려져 있다. 대구의 칼국수는 매운 양념을 기본으로 하는 육개장이나 짬뽕과 달리 멸치 국물에 청방배추를 넣고 끓여 맑고 깔끔한 맛을 자랑하며, 면발도 직접 손 반죽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앞서 언급했듯, 안동을 중심으로 발달한 제사 음식에 사용하는 국수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넣어 만들어 부드러운 것이다. 

청방배추.

중식도 분식으로 ‘찐교스’, 짬뽕, 야키우동

그런가 하면 대구는 중식이 발달한 도시다. 1905년 당시 경부 철도 개설로 조선 3대 상업 도시 중 하나가 되면서 화교들이 정착하는 데 발판이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과 인천에 거주하던 화교들이 대구에 내려오면서 대구의 화교 인구는 5,000명까지 늘기도 했다. 분식에 능한 중식당들은 1960년대 이후 시작된 분식 장려 운동 활황의 혜택을 가장 크게 받았다. 1968년에 시작한 ‘진흥반점’은 언제나 긴 줄이 서는 전국구 짬뽕집이지만, 중식당을 상징하는 기표는 메뉴 이외에는 없다. 면은 칼국수 같은 보들보들한 공장제 중면이고, 국물은 채소가 많고 맵고 달면서 강하고 진하다. 염도가 1.48, 브릭스*가 9.4에 달할 정도다. ‘대구=매운 국물’이란 공식은 짬뽕에서 절정에 다다른 느낌이다. 또 다른 짬뽕 명가 ‘수봉반점’도 중식당인지 분식집인지 분간이 안 된다. 대구의 짬뽕은 중식이 분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음식 역사 레시피’다. 1954년에 시작한 ‘중화반점’은 1974년 야키우동을 선보였는데, 이제는 대구 중식당의 기본 메뉴가 되었다. 만두를 뜻하는 교자의 중국어 발음을 살린 ‘찐교스’도 대구 중식의 고유 메뉴다. 수도권에서 사라진, 맵지 않은 우동도 만날 수 있다.

* 식품에 함유된 고형물의 비중을 대략적으로 측정하는 단위. 100g당 그램 수를 기준으로 한다. 과일의 경우 당도, 국물 음식의 경우 소금과 설탕, 콜라겐 등의 비중을 측량해 산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과는 14브릭스 이상을 고당도로 본다.

대구 진흥반점의 짬뽕. 국물의 염도와 당도를 재 보았다.

대구의 짬뽕

중식이 분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음식 역사 레시피’다.

대구 고유의 분식 납작만두

대구에는 납작만두라는 대구식 변형 만두가 있다. 누른국수와 마찬가지로 납작만두도 대개 공장에서 받아 만든다. 대구 납작만두의 원조는 ‘미성당’이다. 1963년에 영업을 시작한 미성당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납작만두는 돼지기름을 섞어 고기 향기가 나는 식용유로 튀기지 않고 빨리 구워야 한다. 살짝 구운 얇은 납작만두에 파가 들어간 간장과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다. 납작만두는 납작하지만 만두이기에 소가 있다. 삶아서 잘게 자른 하얀 당면과 극소량의 부추가 만두로서의 명맥을 이어준다. 표면은 미끈하고 고소하다. 기름이 매끈함을 더해 식감이 좋은 것. 여기에 간장이 풍미를 올려주고 고춧가루가 기름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시장통에서 파는 만두의 피는 대부분 풍국면이나 칠성시장에서 사 오지만, 미성당은 피도 직접 만든다.

대구의 납작만두.

대구의 분식은 밀가루를 가공하기에 적당한 기온과 분식 장려 운동의 진원지였다는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다양하고 풍성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국형 분식의 대명사인 칼국수가 다양한 형태로 꽃을 피웠고, 중식도 분식의 형태로 변형해 발전시켰다. 국수를 중심으로 한 분식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고 싶다면 대구의 분식을 맛보라.

Illustration | 가루 ‘분’, 밥 ‘식’. 대구가 빚어낸 든든한 분식 한 상.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외부 기고문은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시선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정배

한·중·일 음식의 역사 문화를 연구하고 현장을 탐사한다. 글 전체에 거세게 몰아치는 사료는 읽는 이를 식문화사의 생생한 한가운데로 옮겨놓는다. <조선일보>에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결정적 메뉴’ 등을 연재했으며, 넷플릭스 <한우랩소디>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 자문 역할을 하거나 직접 출연하곤 한다. ‘국물아카데미’, ‘국수학교’ 등 음식 관련 강의 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 저서로 <만두, 한중일 만두와 교자의 문화사>와 <음식강산> 등이 있다.

  • 대구 누들 로드
    대구 밥상 (2) | 박정배
  • EditMijin Yoo PhotographJeongbae Park IllustrationThibaud Her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