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와 스몰스 Records in Daegu (1)|유지성

13년 째 대중문화를 기록해 온 피처 에디터, 그리고 하우스를 비롯한 음악을 제약 없이 탐구하는 디제이∙프로듀서 유지성이 대구의 클럽, 댄스, 바이널 음악 신을 전합니다. 무대의 관찰자이자 참여자인 그의 시선을 빌려 대구의 음악을 더 흥미롭게 들여다 보세요.

오스트와 스몰스 Records in Daegu (1)|유지성

오스트와 스몰스 Records in Daegu (1)|유지성

13년 째 대중문화를 기록해 온 피처 에디터, 그리고 하우스를 비롯한 음악을 제약 없이 탐구하는 디제이∙프로듀서 유지성이 대구의 클럽, 댄스, 바이널 음악 신을 전합니다. 무대의 관찰자이자 참여자인 그의 시선을 빌려 대구의 음악을 더 흥미롭게 들여다 보세요.

특정 도시에서 일어나는 낯선 움직임은 음악 신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과거를 살펴봐도 수도나 한 나라의 최대 도시에서 탄생하지 않은 장르가 많다. 디트로이트의 테크노, 시카고의 하우스, 브리스톨의 트립합Trip hop, 장르보다 신 자체에 가까웠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맨체스터의 매드체스터Madchester 등. 한국의 음악 신, 그중에서도 클럽 및 댄스 음악과 바이닐 관련 신은 서울에 편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지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성과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는 도시들이 있다. 부산이 괄목할 만한 몇몇 장소의 약진과 함께 특유의 역동적 분위기를 구축했다면, 근래 가장 흥미로운 도시는 대구다. 지금 대구의 음악 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두 공간, 클럽 오스트ost와 스몰스Smalls 레코드 바를 소개한다.

클럽 및 댄스 음악과 바이닐 관련 신은

서울에 편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지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성과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는 도시들이 있다.

OST

2021년 5월, 대구 동성로에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을 다루는 클럽 오스트가 문을 열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라 미래는커녕 당장 내일도 짐작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과감한 결정이지만, 충동적인 건 아니었다. “터널 안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이 척박한 환경에 뭐라도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오스트를 이끄는 대표 서준혁은 대구 출신으로 대구의 클럽 신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모두가 대구를 댄스 음악 불모지라 여기고 있지만 그는 곳곳에서 분명 가능성을 발견했다. “하우스나 테크노 클럽을 지향한 곳들은 1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그래서 오스트를 열기 전엔 성인텍, 카페 같은 외부에서 파티를 자주 열었죠. 거기서 봤던 장면들이 있거든요. 사람들이 손을 들고 함성을 지르고 기뻐하는. 여긴 경쟁 구도가 없으니까 그런 시간이 서서히 축적됐던 것 같아요. 국내외 많은 도시의 공간에서 보고 겪은 경험들이 진한 잔상으로 남아 있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소명 의식 같은 게 생겼어요.”

도시가 보여준 가능성에 힘입은 한 개인의 의지에서 출발한 오스트는 바로 그 ‘마의 1년’을 가뿐히 넘어섰고, 두 번째 겨울을 앞둔 지금 5명의 로컬 레지던트 디제이 Aktuell, Bae, Hyun, Piggisoup, Future Guy의 터전인 동시에 국내외 검증된 디제이들이 확신을 갖고 찾는 장소가 됐다. “전자음악의 여러 바운더리 안에서 모든 걸 시도해보려 해요. 대구의 다른 클럽에선 듣기 어려운 음악들요. 자칫 중구난방이 아닌가 고민한 적도 있지만, 그 역시 오스트의 개성이 아닐까 싶어요. 첫 디제이가 하우스로 밤을 시작해 테크노로 갔다가 더 늦은 시간엔 레이브에 가까운 톤으로 바뀐다든가 하는 식인데, 그렇게 서로에게 자극이 되기도 하죠.” 서준혁 대표Piggisoup 또한 레지던트 라인업의 일원으로서 오스트가 선보이는 다양한 색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그러다 보니 이상적 사운드에 대한 고민에는 클럽 운영자의 입장과 디제이의 관점이 함께 담겼다. “전국을 돌며 스피커를 찾기도 하고, 하드웨어나 룸 어쿠스틱 관련 공부도 많이 했어요. 디제이가 요리사라면, 요리가 빛나기 위한 클럽의 환경이 매우 중요하니까요.” 그런 만큼 장르의 다양성과 별개로 그가 초청하거나 오스트를 같이 일구는 디제이들의 역량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월을 녹여 자기 행위를 다진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무언가가 있어요. ‘ost mix’라는 믹스셋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는데, 그게 제가 한국 언더그라운드 신을 보는 시선이에요.” 매 주말, 그 시선에 공감하거나 그 신이 궁금한 관객들이 오스트에 모인다. “몇 시에 오든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편안하게 머무르며, 오래 있어도 힘들지 않은 공간이 되길 바라요.”

“터널 안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이 척박한 환경에 뭐라도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마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Smalls

문화동에 자리한 스몰스 레코드 바는 규모가 작다. 작아서 ‘스몰스’인 건 아니다.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에 나오는 바 이름이에요. 영화 배경이 된 시기에 실존한 가게죠. 알앤비, 훵크, 소울 등을 틀어주던.” 스몰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가게 면적에 비해 매우 큰 스피커다. 스피커는 사이즈만큼 믿음직한 소리를 내지만, 거기서 확인할 수 있는 건 볼륨보다 결심이었다. “타공판 같은 걸 효과적으로 이용해 가게는 작아도 음악을 공간감 있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스몰스를 운영하는 DJ Acorn은 20대 초반부터 디제잉을 시작한, 상당히 오랜 구력을 지닌 디제이다. “당시 대구엔 거의 힙합만 있었어요. 저도 힙합 클럽에서 음악을 틀었는데, 어떤 풀리지 않는 욕구 같은 게 있었죠.” 그 욕구는 열정으로 바뀌어 최소 3개 이상의 장르를 믹싱해 자웅을 겨루는 디제이 경연 ‘레드불 쓰리스타일’ 한국 대회 우승으로 이어진다. “1년 동안 미친 듯이 준비했어요. 쌓인 것들을 해소한다는 마음이었죠. 그 이후론 클럽 소속을 벗어나 파티를 기획하고 믹스셋을 발표했어요. 제 색깔을 찾기 위한 시간이었죠.” 스몰스가 문을 연 것은 2021년 새해 첫날, 그가 우승한 이후 7년이 넘게 걸린 오래된 계획이었다. “생각만 하던 버킷 리스트였어요. 우리 같은 디제이도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죠.”

“신청곡도 안 받고 느낌 혹은 디제이 취향대로 트는데도 단골이 생긴다는 게 너무 기뻐요.

그래서 제가 대구에 있어요.

이 소수가 모여서 음악 신이 되는 거겠죠.”

 스몰스의 음악은 어떤 의미에선 ‘발레아릭 Balearic, 1980년대 이비자 섬에서 생겨난, 여러 장르를 과감히 융합한 창의적인 디제잉 방식 혹은 그 사운드’라 말할 수 있다. 주로 해변 무드를 뜻하는 정서적 의미의 발레아릭이 아닌, 무엇이든 선곡의 대상이 된다는 어법으로서의 발레아릭에 가깝다. 그리고 그런 발레아릭은 실제로 음악가가 아닌 디제이가 창조한 개념이기에, 결국 디제이의 뚝심이나 설득과도 맞닿아 있다.“ 처음 들어도 좋은 노래는 느낌이 오잖아요. 아예 모르는 곡이면 더 좋고. 스몰스에 한번 온 분은 꼭 재방문해요. ‘음악 때문에 다시 왔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진짜 행복해요.” 그렇게 DJ Acorn은 하루하루가 여전히 즐겁다. “어떤 특별한 기억보다는 매일매일이 기억에 남아요. 출근할 때마다 이 가게가 좋고요. 신청곡을 받지 않고 디제이가 자신의 느낌이나 취향대로 트는데도 단골이 생긴다는 게 너무 기뻐요. 제가 대구에 있는 이유도 그래서고요. 이 소수가 모여서 음악 신이 되는 거겠죠.” 사랑방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아담한 스몰스엔 지정된 레지던트는 없지만, DJ Acorn을 비롯해 Sol, Mui, Slowlife 등 폭넓은 취향으로 레코드(바이닐)를 대하는 디제이들이 주로 무대에 선다. 더불어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타 지역이나 해외 게스트를 초청한다. “깊이와 열정이 가장 중요해요. 믹스셋을 들어보면 느껴지죠. 이곳이 손님들의 음악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발판이 됐으면 해요.” 스몰스는 취향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만큼 열린 마음의 친구들을 기다린다.

Illustration | 차례로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을 다루는 동성로의 클럽 ost, 폭넓은 취향의 바이닐이 플레이되는 스몰스 레코드 바의 풍경. *클럽 ost는 더현대 대구 B2 뮤직바의 라이브셋을 협업하고 있다.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외부 기고문은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시선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지성

2009년부터 <지큐 코리아GQ KOREA> 에디터, <플레이보이 코리아Playboy Korea>의 부편집장으로 일했다. 2018년 프리랜스 에디터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로는 ‘BUDXBEATS’, ‘Discogs’, ‘Red Bull Music’ 등을 비롯해 주로 여러 음악 관련 플랫폼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현재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및 한국 힙합 어워즈 선정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2022년 가을부터 <하입비스트 코리아HYPEBEAST KOREA>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추신 : 'Jesse You'를 구글링하면 디제이이자 프로듀서로서의 그를 볼 수 있다.

  • 오스트와 스몰스
    Records in Daegu (1)|유지성
  • EditMijin Yoo IllustrationAnuj Shrest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