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북스
책 읽는 유령이 맞이하는 사유의 공간.
어떤 순간을 기록하고 싶을 때 우리는 카메라 앞에 선다.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의 피사체가 되어 수일의 시간을 기다려 얻은 사진 한 장이 과연 기억 속에서 쉬이 잊힐 수 있을까? 석주사진관의 이석주 대표는 그 기나긴 여정에 기꺼이 동참하는 이들의 모습을 온전히 담아내는 방법으로 아날로그 필름 사진을 택했다. 셔터만 누르면 되는 디지털 사진과 달리, 아날로그 필름 사진은 적정 노출과 초점을 수동으로 조정한 뒤 피사체와 함께 호흡해 셔터를 누르고, 현상·정착·수세·건조 등 16번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진 한 장이 나온다. 이 대표는 이 불편하고 미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방식이 만들어내는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디지털의 편리함 속에 숨어 있던 진짜 사진을 마주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인물의 멋진 모습보다도, 입체적인 얼굴 속 크고 작은 명암을 포착하며 그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담아내는 데 집중하는 그의 모토와 꼭 닮았다. 암실 작업은 석주사진관의 정체성이기도 한데, 단순하고 반복되는 작업처럼 보이지만 약품의 배합이나 적정 온도, 처리 시간 등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다. 작은 오차만으로도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 십수 년 동안 해온 일이지만 여전히 긴장되고, 여전히 설레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 대표는 한국 근대 사진 역사의 선구적 위치를 점한 대구에서 나고 자라 과거 사진 산업의 전성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지금까지도 대구사진비엔날레가 2년마다 열리고 있어 그 궤적을 좇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전성기를 지나 필름 사진 문화가 점차 사라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 이 대표는 느리고 투박하더라도 정통 방식을 고수하며 세상의 속도를 늦추는 일을 12년 동안 지속하는 중이다. 단순히 사진이라는 결과물이 아닌, 진정한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석주사진관으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