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사이 어딘가 응시와 사유 (2) | 이민경

도시는 크게 보면 두 세력 간에 벌어지는 팽팽한 힘겨루기 같다. 자연과 건물, 공간을 채우는 사람과 물건, 낮과 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좌파와 우파. 도심의 건물을 관찰하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그것이 때로 숨막히는 우리네 현실처럼 느껴질 때 나는 공원으로 곧잘 도망쳤다. 작년까지 살았던 도쿄에는 내 한 몸 쉬어 갈 공원이 동네마다 참 많았다. 나무 그늘 아래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신카이 마코토Makoto Shinkai의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The Garden of Words>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상상에 빠졌다. 녹색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노라면 시끄러웠던 마음이 이내 잔잔해지고 평화가 깃들었다.

대구 도심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경상감영공원을 찾은 건, 그러니까 나의 본능적인 선택이다. 나는 도시의 힘이 여전히 공원에 있다고 믿는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알 만한 사람이 만들었거나 규모나 시설로 승부 보는 공원이 아닌, 평범한 보통의 공원 말이다. 공원이 시민에게 어떻게 기능하느냐에 따라 그 도시가 살 만한 공간인지 판별된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저자 유현준 교수는 산업화 이후 도심에 자연을 도입하는 개념이 생겨났고, 이것이 바로 도심 공원의 시작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빌딩숲에서 바쁘게 사는 현대인의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할 테다.

경상감영공원

조선 선조 34년(1601년) 경상감영이 있던 곳. 1970년 대구 중심부에 개장한 도심 속 정원이다. 계절마다 공원을 수놓는 다채로운 꽃들이 발길을 사로잡는다.
 

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길 99

경상감영공원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부터 광복 후 1965년까지 경상북도 청사가 있던 곳이다. 1970년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대구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초창기 중앙공원으로 불린 건 그 때문이다. 이후 1997년 오늘날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들어서자마자 시간이 멈춘 듯 묘한 기분이 든다. 뒤쪽으로는 공사 중인 건물이 빼곡한데, 이곳만큼은 어쩐지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는 느낌. 생활의 호흡, 들숨과 날숨이 저절로 한 템포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다. 경상도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과 처소로 사용한 징청각 등의 문화유산을 둘러보는데, 커다란 나무 그늘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향연이 잔디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바꿔주었다. 사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동선이다. 작은 공원인데 공간이 단조롭지 않도록 길이 구불구불 신기하게 이어졌다. 여기서 한 방향이 아니라는 것은 발길을 옮길 때마다 다양한 장면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덕분에 다채로운 각도의 공원을 즐길 수 있었고, 사진기에는 서로 다른 풍경들이 담겼다. 담소를 나누는 중년의 아주머니들, 사진을 찍는 할아버지, 잠시 통화를 하는 젊은이들과 뛰노는 아이들···. 한가로운 오후, 주민들이 눈앞을 교차하며 지나갔다. 게다가 지나치게 넓지 않기에 언제든지 주변에 접해 있는 도로와 주거, 상업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빠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분수, 돌담, 자갈이 깔린 산책로, 통일의 종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이제 대구의 과거로 넘어가기로 한다.

예술인들의 옛 거리 향촌동 북성로 일대를 잠시 돌아본다. 대구에서 행락업소가 가장 번창하던 지역으로, 1950년 한국전쟁 직후 많은 문화예술인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시인 구상, 화가 이중섭 등 많은 예술가가 지역 문인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거리를 일구던 곳.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의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전에서 확인한 화가 이중섭의 은지화,담배를 포장하는 은박지에 그린 그림가 바로 이 거리의 ‘백록다방’에서 그려진 것이다. “그때는 아무도 그 가치를 몰랐다”는 옛터 표지판의 문구가 마음을 울렸다. 당시에는 파격적인 그랜드피아노가 있어 음악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는 ‘백조다방’과 한국전쟁 당시 간행된 구상의 시집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가 열린 ‘꽃자리다방’이며, “폐허에서 바흐의 음악이 들렸다”라고 외신에 소개된 바 있는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는 옛터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모두 젊은 친구들의 카페와 허름한 음식점과 모텔로 바뀌어 있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남아 있는 것은 정말로 없을까. 자료를 뒤지다가 아직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녹향’을 발견했다. 현재는 향촌문화관 지하에 있다고 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실 향촌문화관을 향하며 크게 기대한 것은 없었다. 다만 대구의 거리에서 만난 익명의 사람들에게서 서울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어떤 자긍심 가득한 눈빛과 태도를 읽은 터라 무작정 이곳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대구 사람의 현재를 만든 것, 그 똑 부러진 자신감의 근거는 과거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도 있었고. “대구 처음이에요? 대구 사람들이 겉으로는 딱딱해 보여도 속은 안 그럽니다. 정이 진짜 많아요.” 택시 기사님의 말을 곱씹는다. 그래, 여기는 국채보상운동(1907년)이 처음 일어난 곳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선포되기 전 만세 시위 운동(1919년)이 대대적으로 일어난 대구가 아닌가.

근대 대구의 풍경이 눈앞에 실물 크기로 재현된 향촌문화관에 발을 들이니 나는 별안간 1950~1960년대 대구 최고 상업지인 중앙로의 한복판에 서 있다. 여관, 양복점, 금은방, 주점, 북성로 공구 골목 등을 지나쳐 교동시장으로 들어갔다. 따로국밥이 대구에서 시작된 사실을 여기서 처음 알게 됐다. 한국전쟁 피란 시절 인기 음식이던 이 국밥은 무와 선지를 넣고 푹 우려낸 국물이 시원하다고 해서 모두가 좋아했단다. 여기에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이며 힘겹고 서러운 시절을 이겨낸 것이다. 대구의 10미 중 하나인 납작만두도 이때 처음 만들어졌다고. 모두가 궁핍하던 때라 고기는 엄두조차 낼 수 없어 채소류를 다져 넣은 것이 얄팍하지만 쫀득한 납작만두의 시작으로, 당시 서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운 별미로 자리 잡았다.

다음은 향촌동의 다방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들이 앉아 있었을 법한 다방 한구석에서 나도 잠시 앉아 그들을 떠올려본다. 구상·김동리·박목월·이효상이 시를 읊고, 변훈·김동진 같은 작곡가가의 명곡이 탄생했으며, 이중섭의 명작들이 그려진 곳. 그들의 얼굴 사진을 차례로 살펴보니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찬란한 한국 근대 문화예술을 꽃피운 사람들의 표정이 한없이 밝아서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특히 대구 문인들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지속적인 검열과 억압에 굴하지 않고 다양한 근대문학을 실험했는데, 현진건의 단편소설 <고향>, <운수 좋은 날>,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학교에서 배운 주옥 같은 작품들이 바로 이곳 대구에서 탄생한 것이다. 신라 시대의 향가나 조선 시대의 시조와 가사가 활발하게 창작되던 지역이 대구 경북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향촌문화관

옛 한국상업은행 대구지점을 개·보수해 개관한 문화 공간으로, 1950년대 문화예술인들의 정신적 고향인 향촌동의 모습을 재현한 문화 공간이다.
 

대구시 중구 중앙대로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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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하에 위치한 ‘녹향’에 들렀다. 1946년 이창수 씨가 축음기 스피커 한 대와 500여 장의 LP판을 가지고 문을 연 이곳은 국내 최초의 클래식 음악 감상실로, 당시 한국전쟁 전후 서울에서 피란 온 문인과 음악인들이 모이던 공간이다. 현재는 당시 분위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조용하고 엄숙했지만, 도심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주인의 아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다행스럽기도 했다. 요즘에는 시 낭송과 음악 힐링, 태교 프로그램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건물을 나와 도시를 표류하듯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녀볼까. 귀여운 독립 서점 ‘고스트북스’, 일본 시티팝 음악이 나오던 ‘홀리데이비지터샵’ 등을 산책하다가 고개를 돌리면 타임슬립한 듯 1910년대 지은 건축물이 불쑥 나타난다. 잠시 현기증이 나서 한 매장의 직원이 소개해준 카페 ‘에버글로우’를 들른다. 잊혀가는 교동의 구옥을 리모델링해 요즘 감성으로 재해석한 곳이다. 2층의 어둑어둑한 공간으로 올라가자,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택의 천장이 그대로 드러난다. 공간에 울려 퍼지는 콜드플레이 음악을 들으며 생각했다. 아, 대구에서는 천장도 올려다봐야 하는구나. 적산가옥도, 고택을 리노베이션한 공간도 여전히 많아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 기분이 든다.

신기하게도 대구에 오니 한국이 보인다. 그리고 미래가 보인다. 그것이 바로 이 매력적인 도시 대구의 진짜 멋이다.

이민경

잡지 <스타일 H>, <인스타일Instyle> 패션 에디터, 현대카드에서 콘텐츠 마케팅 관련 일을 했다. 오랜 기간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며 차곡차곡 쌓아온 감각으로 도쿄라는 도시를 하나의 브랜드로 비춰 다층적 시선으로 풀어낸 책 <도쿄 큐레이션>을 썼다. 500페이지가량의 두꺼운 책에는 6년간 도쿄에 머물며 도시를 관찰한 깊이 있는 풍경이 담겨 있다. “들어가 봐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는 책의 첫 문장처럼, 작가는 실제로 오랜 취재를 통해 자신이 마주하고 경험한 순간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풀어내며, 일상 속 크고 작은 영감을 통해 삶의 태도를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