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플릭 윤동원 스트리트 패션 너머의 문화

매장 앞에서 오픈 시간 전 신상품을 기다리던 한 소년이 있다. 어느덧 어른이 된 그는 좋아하는 브랜드로 가득 찬 스트리트 패션 편집숍 ‘이플릭’을 열었다. 자신이 나고 자란 대구에서 말이다. 오픈런에 완판된 대구 티셔츠도 만들었다. 왜 하필 대구였냐는 질문은 그에게는 의미 없다. 숨 쉬듯 당연한 일이었기에. 대구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며 너털웃음을 짓지만, 결국 이플릭이 가는 길은 뚜렷하다. 좀 더 ‘대구다운’ 문화를 만들고, 좀 더 ‘나답게’ 살아가기.

이플릭 윤동원 스트리트 패션 너머의 문화

이플릭 윤동원 스트리트 패션 너머의 문화

매장 앞에서 오픈 시간 전 신상품을 기다리던 한 소년이 있다. 어느덧 어른이 된 그는 좋아하는 브랜드로 가득 찬 스트리트 패션 편집숍 ‘이플릭’을 열었다. 자신이 나고 자란 대구에서 말이다. 오픈런에 완판된 대구 티셔츠도 만들었다. 왜 하필 대구였냐는 질문은 그에게는 의미 없다. 숨 쉬듯 당연한 일이었기에. 대구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며 너털웃음을 짓지만, 결국 이플릭이 가는 길은 뚜렷하다. 좀 더 ‘대구다운’ 문화를 만들고, 좀 더 ‘나답게’ 살아가기.

스트리트 패션 편집숍을 운영하는 사람답게 옷차림이 멋져요.

제가 평소 입는 스타일이에요. 30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편한 옷차림이 좋아지더라고요.

교동에 자리한 매장의 특색도 확실해요. 특히 매장에서 트는 음악이 빗소리와 잘 어우러지네요.

매장을 위해 만든 플레이리스트예요. 공간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음악의 결이 중요하잖아요. 이플릭에서 들을 수 있는 시그너처 음악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저와 친한 DJ 베이비쿨 형이랑 한 달에 한 번씩 믹스셋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현재 14개의 믹스셋을 만들었어요. 이플릭 음악을 다른 사람과도 나누고 싶어서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렸는데, 대구 교동 주변 카페와 미용실, 술집 등에서도 이플릭 믹스셋을 트는 곳이 많다고 들었어요. 저희 둘 다 뿌듯해요.

이플릭을 열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에서 판매직으로 3년 일했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옷에 워낙 관심이 많았거든요. 매장에서 근무하면 다른 사람보다 빨리 신제품을 보거나 살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렇게 일하다 스물여덟 살에 이플릭을 열었죠. 당시 대구에는 패션 편집숍이 많지 않았어요. 보통 스트리트 패션 편집숍을 오픈했다고 하면 스트리트 패션을 좋아해서 시작했다고 생각할 텐데요. 저는 스트리트 패션에 대한 관심도 물론 있지만, 이와 연계할 수 있는 문화 행사를 만들어가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서울에 놀러 가면 팝업 스토어나 플리 마켓을 꼭 찾곤 했죠. 그래서 매장을 열면 단순히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도 함께 파는 매장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팝업 스토어, 협업 컬렉션, 파티, 플리 마켓 등 다양한 스트리트 문화 행사를 전개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어떤 행사를 했나요?

얼마 전 불로막걸리와 협업해 ‘썸막걸리 페스티벌’을 개최했어요. 주제는 ‘놀라운 순간Awesome Moments’이었고요. 방문객에게 막걸리와 전을 제공하고, 그에 어울리는 DJ의 음악을 틀었죠. 대구의 뜨거운 햇살과 낮술이 어우러진 현장이었어요. 또 이플릭과 연관된 브랜드와 함께 두세 달에 한 번 팝업 스토어를 열고 있어요. 7월 말 헬로선라이즈HELLO SUNRISE와 함께할 예정이고, 현재 세이투셰SAY TOUCHÉ와 일정을 조율하는 중이에요. 8월 말에는 대구FC와 협업해 티셔츠를 만들고, 11월에 성수 피치스 도원D8NE by Peaches과 대구에서 행사를 열 계획입니다. 말하다 보니 올해 예정된 행사가 꽤 빽빽하게 채워져 있네요.

이플릭은 스트리트 패션 편집숍을 넘어 하나의 복합 문화 공간이란 생각이 들어요. 대구라는 지역에 대한 애정을 담아 스트리트 문화 행사를 꾸준히 기획하고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다 같이 놀고 어우러지는 게 좋아요. 행사를 즐기는 사람, 현장 가득 울려퍼지는 음악, 그 속에서 오가는 마음까지도요. 팝업 스토어를 열 때는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오랜 시간 줄 서서 기다리는 분도 있어요. 막걸리 행사에는 흥청망청 제대로 취하러 오는 분도 있고요. 결국 제가 사는 대구에서 자신의 삶을 즐기고 싶은 분들이 이플릭에 모이죠. 8년 전 처음 이플릭을 방문한 고객이 중학생이었는데, 얼마 전 성인이 되어 행사에 찾아온 것을 보니 감개무량하더라고요. 사실 혼자 모든 걸 기획해서 준비하고 현장을 운영하는 일이 녹록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이 행사를 즐기는 모습을 보거나 SNS에 업로드된 피드백을 읽으면 ‘아, 이 맛에 연다’ 싶어요.

신선하면서도 재미있는 일을 캐치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이플릭이 취급하는 국내외 패션 브랜드도 다양하고요. 어떤 기준으로, 어떤 브랜드를 입점해 제품을 소개하고 있나요?

첫 번째는 조화로움을 고려하려고 해요. 새로운 브랜드가 이플릭에 입점했을 때, 이미 입점한 다른 브랜드들과 톤 앤 매너가 어울리는지가 중요해요. 두 번째는 희소성이에요. 보통 대구 내 패션 편집숍은 대개 동성로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저희는 교동에 있어요. 동성로가 아닌 교동 이플릭에 일부러 찾아와야만 볼 수 있는 옷을 소개하기 위해 이플릭에서만 만날 수 있는 브랜드로 차별화했죠. 그래서 저는 먼저 다른 편집숍에서 이미 판매하고 있는지 꼭 살펴봐요. 이플릭에 입점한 브랜드는 다른 매장에는 없거나, 한 군데 정도 있을 만큼 희귀해요. 마지막으로 디스플레이에도 꽤 신경 쓰고 있어요. 손님이 보기 편하게 브랜드별로 섹션을 나눠서 진열하는 편이거든요. 보통 규모가 큰 패션 편집숍은 티셔츠‧재킷‧바지 등 의류 카테고리로 구분하곤 하는데, 이플릭을 찾는 손님들은 특정 브랜드의 옷이 어디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편이라 브랜드 섹션별로 진열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요.

교동에 자리 잡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동성로 건물 4층에서 시작했어요. 당시 자금 상황에 맞춰 월세가 저렴한 곳을 찾았죠. 그러다 찾아오는 손님이 늘어나고 다양한 브랜드를 취급하면서 좀 더 큰 매장이 필요했어요. 당시 친한 지인이 교동에서 피자집을 했는데, 자신의 가게 2층이 비었다고 추천하더라고요. 40평(132㎡)으로 공간도 널찍하고, 골목도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2019년만 하더라도 교동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유동인구가 많거나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소비자의 코어를 탄탄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겠다고 판단했죠. 게다가 4층에 있을 때는 주로 옥상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었거든요. 공간이 작고 야외라서 행사 기획에 제약이 꽤 많았는데, 교동으로 옮긴 후 이플릭만의 행사를 열 수 있었어요. 예상대로 고객층도 탄탄해졌고요.

이플릭 하면 대구의 영문이 적힌 티셔츠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아요. 2016년 론칭 1주년을 맞아 처음 대구 티셔츠를 선보인 뒤, 매년 대구 티셔츠를 한정 판매하며 완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고요.

처음에는 판매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고마운 분들에게 선물하려는 목적이었어요. 평소 친분이 있는 하드히터스HARDHITTERS 디렉터와 이플릭 론칭 1주년에 대구 굿즈를 제작하면 재미있겠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그동안 매장을 찾아온 손님이나 래퍼들을 위해 50장을 만든 뒤 SNS에 올렸죠. 그런데 판매해달라는 반응이 꽤 많더라고요. 긍정적 호응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죠. 그렇게 매해 디자인은 유지하되 대구 타이포그래피 색깔만 바꿔오다가, 3주년 때는 제가 대구 디자인 티셔츠 공모전을 주최해 상금을 내걸었어요. 당첨자에게 상금을 주고, 그 디자인으로 제품을 출시했죠. 올해는 이플릭 론칭 8주년을 맞아 김세동 작가와 협업해 대구 티셔츠, 모자, 컵, 키링, 포스터를 하드히터스와 함께 제작했어요.

매해 대구 티셔츠를 만들 때 어떤 점을 가장 고려하나요?

F&B 브랜드에서 다채롭게 식음료를 출시해도, 대중은 결국 오리지널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하잖아요. 대구 티셔츠도 마찬가지예요. 여러 제품을 출시했는데, 제일 처음 선보인 기본 버전을 꾸준히 찾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대구 티셔츠가 지닌 최초의 형태를 유지하고자 해요. ‘대구DAEGU’라는 이름, 지역번호 ‘053’을 모티프로 그대로 가져가면서요.

대구 티셔츠로 여러 기업과 협업하고 있죠?

주로 여러 기업이나 브랜드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는 편이에요. 전통 있는 베이커리인 태극당에서 연락이 와서 직원 유니폼을 만들기도 했고요. 2019년에는 축구팀인 대구FC와 협업했어요. 대구FC팀 컬러인 하늘색과 창단 연도인 2002에서 영감을 받아 에디션 제품을 만들었죠. 서포터즈를 위한 이벤트였어요. 올해도 다시 협업해서 새로 바뀐 대구FC 컬러를 바탕으로 티셔츠를 출시할 예정이에요. 래퍼 사이먼 도미닉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브랜드 다크룸 스튜디오Darkr8m Studio와도 6주년에 같이 모자를 만들었고요. 래퍼 창모와 그의 친구들이 만든 브랜드 리빌리LIBILLY와도 협업했습니다. 그 외에 풋락커Foot Locker, 캐치볼Catchball 등 생각해보니 참 많네요.

매일 새로운 프로젝트가 대표님을 기다리고 있겠군요. 이플릭을 운영하면서 언제 재미와 보람을 느끼나요?

일단 제가 ‘성덕’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요.(웃음) 좋아하는 기업과 협업하거나 아티스트가 방문했을 때 그렇죠. 매장 한편에 둔 달력에 래퍼들의 사인이나 방문 흔적을 남겨놓기도 했어요. 그리고 제가 사는 곳을 조금 더 괜찮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예요. 2019년에 대구에서 일하는 가게 6곳과 함께 자선단체 체리무브먼트Cherrymovement를 꾸렸는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지금보다 더 따뜻한 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시작했어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제작비를 부담하고, 저희가 만든 달력의 판매 수익금을 전부 기부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죠. 2023년 초에 기부한 365만 원은 아이들의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고 들었어요. 내년에도 달력을 만들어서 조금 더 따뜻한 대구,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게 작은 힘이나마 보탤 예정이에요.

대구에서 이플릭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요?

이플릭은 여러 좋은 브랜드를 소개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재미있고 다양한 문화를 대구 시민과 나누고 싶은 곳이기도 해요. 사실 모든 게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지방에서 스트리트 패션 숍을 운영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매년 이플릭이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할 때마다 관심 가져주시는 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여러 기업이나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대구 굿즈를 꾸준히 만들고, F&B 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싶어요. 20주년에는 건물을 하나 마련해 1층은 카페, 2층은 숍, 3층은 사무실, 지하는 창고로 사용하는 꿈을 꾸고 있어요. 또 이플릭이 주최하는 여러 스트리트 문화와 관련한 페스티벌도 열고 싶습니다. 주류 업체와 협업하는 일도 미래의 공연을 위한 초석이랄까요. 저는 다른 곳이 아닌 대구에서 나고 자라 대구에서 계속 살아갈 거니까요.

Maker's Pick

()

이플릭이 만든 대구 굿즈 베스트 3

이플릭 대구 티셔츠

이플릭이 론칭 1주년 되던 해에 선보인 대구 티셔츠. 첫 시작은 선물로 가볍게 제작했지만, 대구 시민들의 큰 호응에 힘입어 판매용으로 재출시했다. 매년 완판을 놓치지 않는 이플릭 시그너처 상품이다.

다크룸스튜디오 대구 볼 캡

래퍼 사이먼 도미닉의 브랜드로 유명한 다크룸 스튜디오와 협업해 만든 대구 모자. 한자 ‘大邱대구’를 볼 캡에 담았다. 궁서체의 타이포그래피에서 느껴지는 강한 힘이 인상적인 모자다.

이플릭x캐치볼 스니커즈

자체 생산한 카무플라주 패턴의 원단을 소재로 만든 모델. 이플릭의 로고와 대구의 영문이 스니커즈에 새겨져 있다. 이플릭이 론칭 4주년 되던 해에 캐치볼과 협업한 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