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밤에는 테이블 위 조명만이 공간을 은은하게 비추는 곳, 실재계. 원목 가구를 중심으로 곳곳에 놓인 책과 그림은 어딘가 고독함과 쓸쓸함이 느껴지지만, 이 공통된 것들로부터 편안한 사색이 펼쳐진다. 임영훈, 김지은 공동대표는 관성적인 일상에 균열을 내어 작은 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실재계를 열었다. 이에 걸맞게 감상실로 소개되며 주기적으로 전시가 열린다. ‘고독’, ‘사랑’ 등 삶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주제로 삼아 방문하는 이들에게 삶의 작은 힌트와 영감을 던져주고자 한다. 누구나 전시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테이블 한편에는 페이퍼를 비치해놓았다. 주제에 대한 질문에 답하거나 그림 그리기, 하이쿠 짓기 등을 통해 타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실재계의 메뉴는 ‘레이어 프로젝트’*라는 콘셉트 아래 만들어졌다. 첫 번째 프로젝트인 ‘황야의 이리’는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소설 <황야의 이리>에서 착안했다. 메뉴는 심연에 빠진 이들을 위한 칵테일로 구성된다. 만화책 <바텐더>에 나오는 칵테일 위주로 소개하지만, 대표 메뉴는 단연 직접 개발한 ‘실존주의’다. 옛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살구 칵테일을 즐겨 마셨다는 기록에서 힌트를 얻어 기주에 직접 담근 살구청과 탄산수를 배합해 만들었다. 두 번째 프로젝트인 ‘델핀 앤 무질’은 계절에 따라 변주를 꾀하며 작은 재미 요소로 기능한다. 돼지고기와 미역국 라면, 박재서 안동소주와 송명섭 막걸리 등 밤에 즐기기 좋은 메뉴로 구성된다. 철학을 근간으로 둔 듯한 실재계는 두 사람의 의식의 흐름대로 꾸민 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작은 광장을 연상하며 만든 ‘ㅁ’ 자 테이블을 비롯한 다수의 원목 가구는 이들의 오랜 친구인 배수용 목수의 도움을 받아 즉흥적으로 제작했다. 이 즉흥성은 “즐겁고 진실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은 사람들로부터 애정을 얻을 수밖에 없다”라는 두 사람의 확신에서 시작됐다. 비정형적으로 배치된 테이블 앞에 앉아 두 사람이 직접 엄선한 책과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일상에서 놓친 생각의 흐름과 작은 조각들을 마주할 수 있다. 실재계는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에게 느긋한 마음으로 머물 수 있는 감상실이자 아지트가 되어주는 공간이다.

* 두 대표의 시간이 지나며 바뀌는 취향에 따라 새로운 색깔로 덧입혀 가는 실재계만의 프로젝트

  • Type다방
  • Add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길 175 4층
  • Tel0507-1385-1945
  • Opening Hours월-수 13:00-21:00, 목-토 13:00-00:30, 일 정기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