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관한 몇 가지 오해 대구 아키텍처 (4) | 황두진

건축가이자 건축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저술가인 황두진 소장이 대구의 노란 도시 철도에 몸을 싣고 네 편의 글을 전합니다. 지형적 유산과 이름의 연원, 근대건축, 오늘의 모습을 만들어낸 시스템까지 정온하고도 합리적인 이 도시를 두루 돌아볼 요량입니다.

대구에 관한 몇 가지 오해 대구 아키텍처 (4) | 황두진

대구에 관한 몇 가지 오해 대구 아키텍처 (4) | 황두진

건축가이자 건축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저술가인 황두진 소장이 대구의 노란 도시 철도에 몸을 싣고 네 편의 글을 전합니다. 지형적 유산과 이름의 연원, 근대건축, 오늘의 모습을 만들어낸 시스템까지 정온하고도 합리적인 이 도시를 두루 돌아볼 요량입니다.

뉴욕은 마천루의 도시일까 도시에 관한 오해들

존재하는 사물 치고 오해와 편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없다. 이는 역으로 그만큼 관심을 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천루 하면 뉴욕이 떠오르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 순위 5위까지는 전부 중동, 그리고 서울을 포함한 아시아 도시에 있다. 파리는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낙서와 오물 냄새, 소매치기 등으로 수많은 방문객을 실망시킨다. 한국인이 모두 태권도를 잘 하는 것은 아니며, 이탈리아 사람이 모두 오페라 가수인 것도 아니다. 대구 역시 마찬가지다. 몇 가지 오해가 우리로 하여금 이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동시에 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 궁금하게 만들기도 한다.

큰 언덕? 너른 촌락? 대구의 연원

대표적 오해로는 대구가 언덕의 도시라는 것이다. 이 오해는 대구의 한자인 ‘大邱’의 연유를 정확히 이해해야 풀린다. 원래 대구의 옛 이름은 삼국시대까지 ‘달구벌達句伐’이었다. 여기서 한자는 뜻과 무관하고 그냥 음을 표기한 것이다. ‘너른 촌락’ 정도의 의미였다고 한다. 이후 신라 경덕왕 때 중국식 제도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많은 지명이 오늘날처럼 두 음절의 한자가 되었고, 달구벌은 ‘대구大丘’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역시 한자로 음을 표기하는, 이른바 음차를 한 결과인데 여기에 ‘언덕 구’ 자가 들어간 것이 이후 두고두고 오해를 낳았다. 

조선 시대 영‧정조 연간에 ‘丘’ 대신에 현재와 같은 ‘邱’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오해는 시작된 뒤였다. ‘너른 촌락’이 엉뚱하게 ‘큰 언덕’이 된 것이다. 한국인만 오해하는 것이 아니다. 주한 외국인이 종종 한국 지명을 영어로 바꿔 부르곤 하는데, 천안天安은 ‘Heavenly Comfort’, 부산釜山은 ‘Cauldron Mountain’, 그리고 대구는 ‘Big Hill’이다. 그런데 막상 대구를 가 보면 이런 개념이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청라 언덕과 같은 언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덕이 다른 도시에 비해 특별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건물과 건물 사이로 산이 아닌 하늘이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즉 ‘큰 언덕’이 아니라 ‘너른 촌락’이 대구의 공간적 정체성에 가깝다.

오히려 건물과 건물 사이로

산이 아닌 하늘이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큰 언덕’이 아니라 ‘너른 촌락’이 대구의 공간적 정체성에 가깝다.

대구는 정말 분지 도시일까

이것은 자연스럽게 ‘대구는 분지’라는 두 번째 오해로 연결된다. 주암산, 최정산, 대덕산, 팔공산 등 높은 봉우리들이 대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대구가 분지인 것은 맞다. 그런데 산이 많은 한반도의 도시 치고 분지 아닌 곳이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대한민국 주요 도시의 원도심에 주변 산자락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원을 그려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얻는다. 반지름 기준으로 서울은 1.5km, 부산 동래는 1.6km, 광주는 2.7km, 그리고 대전은 3.8km 다. 대구는? 그 중간 정도인 2.3km다. 정교한 방법은 아니지만, 유독 대구가 분지 지형이라는 오해를 풀 정도는 될 것이다. 대구가 분지라는 생각은 아마도 큰 언덕과 맞물리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대구의 독특한 성격은

지형적 특성보다는 오히려 원도심의 꾸준한 존재감에 있다.

삼국시대부터 한자리, 도시를 지탱하는 원도심의 힘

대구의 독특한 성격은 지형적 특성보다는 오히려 원도심의 꾸준한 존재감에 있다. 대한민국 도시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바로 원도심의 쇠락이다. 서울의 전통적 상업 가로이던 종로가 활력을 잃은 것은 잘 알려졌고, 부산의 원도심인 중구 일대도 이전과 사뭇 다르다. 부산영화제가 이 지역을 등지고 도시 반대편 해운대의 신개발지를 찾아간 것이 그 상징적 예다.  원도심의 쇠락은 상업 활동의 부진만이 아닌, 상주 인구의 감소와 이로 인한 여러 사회적 문제를 유발한다. 그런데 대구는? 대구 역시 신개발지가 늘어나고 있지만, 전국에서 원도심의 무게중심이 가장 움직이지 않은 대표적 도시로 손꼽힌다. 일설에 따르면 원삼국시대 이후 도시의 중심이 불과 2km도 이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 대구는 주요 대도시치고는 매우 특이하게 아직도 단핵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대구 원도심이 유독 활력이 넘치고 매력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구는 주요 대도시치고는 매우 특이하게

아직도 단핵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대구 원도심이 유독 활력이 넘치고 매력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커진 대구, 미래는

그러나 이 또한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대구에 대한 또 다른 오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 대구 중구의 인구 추세를 보면 그 우려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듯하다. 2009년에 7만7,585명이던 중구 인구는 2015년에 8만928명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2021년에는 7만4,727명으로 줄어들었다. 3.68%의 감소인데, 같은 기간 중 대구 전체의 인구는 250만9,187명에서 241만2,642명으로 3.84% 감소했다. 즉 아직까지는 원도심의 인구 감소 추세가 대구 전체보다는 덜하다. 그런데 최근 큰 변수가 생겼다. 2023년 7월 1일 대구 인근 군위군이 대구로 편입되면서 대구는 전국의 특별시·광역시중 면적 1위의 도시가 되었다. 군위군의 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면적 증가에 비해 인구 증가는 그리 크지 않다. 이를 통해 대표적 인구 소멸 지역으로 손꼽혀온 군위군의 미래는 밝아졌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온 전통적 단핵 방사형 도시 대구의 정체성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구 원도심에는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 바야흐로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려는 대구의 미래가 궁금한 이유다.     

Illustration | 어스름이 지는 시간 바라본 대구 원도심 풍경. 황두진 소장의 사진을 바탕으로 작화했다.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외부 기고문은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시선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황두진

황두진은 건축가이자 건축을 매개로 역사와 사회를 기록하는 저술가다. 서울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2000년 자신의 사무실을 시작했다. 서울 구도심에서 출발해 작품과 강의, 전시를 통해 한국과 해외로 활동 범위를 넓혀왔다. 서울시건축상, 건축역사학회작품상 등을 수상했고, 대표작으로 캐슬오브스카이워커스, 원앤원 63.5, 춘원당 한방병원 및 박물관,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한국관을 비롯해 일련의 한옥 작업 등이 있다. <무지개떡 건축>,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등 7권의 저서에서 그의 시야를 찬찬히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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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아키텍처 (4) | 황두진
  • EditMijin Yoo PhotographDoojin Hwang IllustrationThibaud Her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