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뉴욕, 그리고 보통 사람들 TK is the New Black (1)|임근준

한국 현대 미술을 오랜 시간 관찰해 온 평론가, 서울 태생, 경계성 아스퍼거 증후군, 커밍아웃한 바이섹슈얼인 임근준(이정우)이 경계 밖의 시선으로 대구 경북 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합니다. 대구 경북의 미술을 향한 특별한 애정을 전제로, 객관적인 동시에 편파적으로.

대구, 뉴욕, 그리고 보통 사람들 TK is the New Black (1)|임근준

대구, 뉴욕, 그리고 보통 사람들 TK is the New Black (1)|임근준

한국 현대 미술을 오랜 시간 관찰해 온 평론가, 서울 태생, 경계성 아스퍼거 증후군, 커밍아웃한 바이섹슈얼인 임근준(이정우)이 경계 밖의 시선으로 대구 경북 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합니다. 대구 경북의 미술을 향한 특별한 애정을 전제로, 객관적인 동시에 편파적으로.

박서보, 정상화, 이강소… 그리고


대구 경북 출신의 현역 현대미술가로는 박서보와 정상화 등 전후 청년 세대에 속하는 단색화가들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보다 아래 연배인 김구림, 이강소 등 실험미술가의 유명세가 그에 필적한다. 해방 공간 세대인 황현욱은 1974년 대구현대미술제를 창설하고 1988년 인공갤러리를 개관해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에 기여했고, 제1차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는 김수자는 한국의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위치에 서 있다. 내로라하는 이들이 넘치니,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지 못하면 언급되기도 쉽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면면은 산업화 시대와 후기 산업화 시대로의 변환기에 국한하는 성격이 강하다. 지방 경제 위기 시대를 맞은 오늘 대구 경북 현대미술계의 미래도 수도권과 TK 사이의 새로운 대척점과 기우뚱한 불균형의 균형을 찾아내는 과제에 달려 있다. 아마 정치·경제·문화·예술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새로운 주역은 서울의 강남이나 뉴욕의 윌리엄스버그에서

호강하며 사는 특권층 3세가 아니라

영남권 특유의 산업화 중산층과 그 소중한 토양을 이해하는 보통 사람들 가운데에서 나와야 한다.

청년들을 기준으로 보자면, TK 출신의 몇몇 미술인이 서울에서 성공하고 뉴욕에서 유명해지는 일은 더 이상 크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대구 경북의 역사·문화·경제와 맞물리는, 새로운 지역주의 예술운동을 주도할 주역은 서울의 강남이나 뉴욕의 윌리엄스버그에서 호강하며 사는 특권층 3세가 아니라 영남권 특유의 산업화 중산층과 그 소중한 토양을 이해하는 보통 사람들 가운데에서 나와야 한다. 우리가 그 대안적 미래를 그려보고자 한다면, 나는 TK 현대미술의 역사적 뿌리부터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구 미술을 만든 것, 경계를 가로지르는 일

TK는 종종 우파의 성역처럼 인식되지만 20세기 초 우파 서동진의 수채화 운동과 좌파 이여성과 김용준의 민족적 모더니즘 운동, 그로부터 자양분을 얻은 후속 세대 이인성·이쾌대·유영국의 역학 관계를 살펴보면 좌우 합작과 교류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1954년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로 나아간 서동진은 화가로서 위대한 성취를 거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수채화 교육과 운동을 통해 대구 경북 지역의 현대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수채화 운동은 모필 문화권인 동아시아에서 서유럽의 현대미술을 받아들이고자 할 때, 낯선 유화보다는 수채화가 더 적합하다는 판단 아래 전개됐다. 대표는 이시이 하쿠테이石井柏亭로 서동진이 주도한 대구 수채화회는 그가 설립한 일본수채화회를 참조한다. 서동진의 제자 이인성은 일본에서 공부하던 1932년 제19회 일본수채화회전에 참가하기도 하는데, 그를 통해 비로소 세잔·보나르·고갱 등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체현하는 단계에 도달한다.

여운형계 정치인으로서 비운의 길을 걸었던 이여성은 산수화가로 활동을 시작해 민족의 역사화가로 거듭나고자 한 작가이자 <조선미술사 개요>(1955)를 출간한 미술사학자였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동생 이쾌대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서동진과 김용준은 1927년 함께 대구에서 종합 예술 단체 영과회를 만들어,

과거의 구태와 절연하고 0점에서 새출발하는 예술을 추구했으니,

이는 오묘한 좌우 합작의 장면이기도 했다.

반면, 김용준은 민족색을 전제로 하는 사회주의 모더니즘을 추구하다가 몰락한 인물이다. 김환기와 교류하며 백자대호를 수집하고 예찬함으로써 소위 달항아리에서 민족적 모더니즘의 원형을 찾도록 유도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데 서동진과 김용준은 1927년 함께 대구에서 종합 예술 단체 영과회零科會를 만들어, 과거의 구태와 절연하고 0점에서 새 출발하는 예술을 추구했으니, 이는 오묘한 좌우 합작의 장면이기도 했다.

1930년 김용준은 길진섭 등과 함께 백만양화회를 조직해 동양적 현대미술 운동을 추구했는데, ‘백만’은 백색의 야만인, 즉 야수파 등 모더니스트를 뜻하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한데 미술 교사 사토 구니오佐藤九二男의 영향을 받은 유영국도 일본으로 건너간 뒤 SPA연구소에서 길진섭·김환기·김병기 등을 만났고 도쿄 문화학원 유화과에 입학했으니 역시 앞선 세대의 수채화 운동과 민족적 모더니즘의 담론으로부터 어떻게든 혜택을 입은 경우다.

TK 미술이 우리에게 남긴 것, 다음 세대를 향한 기대와 가르침

한국 현대미술의 태동 과정에서 대구 경북 지역 출신의 미술인들은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현대적 미술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저변 확대를 꾀함으로써 자신들의 세대에서 거둘 수 없는 성취를 미래 세대에 이루고자 했다.

앞날을 이끌 청년들에게 기대를 걸고 열정을 투자하는 풍토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TK의 문화적 유산이다. 당신은 TK의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내어줄 참인가? 우리 시대에도 뜨거운 심장을 내놓을 사람이 있을까?

Illustration | 서동진의 <팔레트 속 초상화> 속에 이후 세대 대구 경북 작가들의 초상이 담겼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인성, 이쾌대, 유영국, 김종영, 서동진, 김영준.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외부 기고문은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시선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근준

당대 미술이 붕괴-해체되는 오늘 집요한 역사 연구를 기반으로 한국과 아시아의 미술사를 쓴다. 서울대학교에서 디자인과 미술을 공부하고 큐레이터와 편집장, LGBTQ 운동가로 일했다. 한편 그의 인스타그램 @crazyseoul 은 매일 그가 살피는 인간군상의 샬레다. 이 프로필을 작성하는 2022년 10월 28일 자 포스팅은 예수상, 근비대 아이돌, 푸우 닮은 시진핑 짤, 피에르 술라주의 부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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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itMijin Yoo IllustrationTatsuro Kiu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