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시안스토리 서민규 뷰파인더 너머의 새로운 세상

1950년에 출간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화성연대기>는 화성으로 이주하고 정착한 지구인들의 삶을 담아낸다.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에피소드가 가득한 이 공상과학소설에 매료된 사람이 있다. 서민규 대표는 이 책의 이름을 따 출판사 ‘마르시안스토리Martianstory’를 만들었다. 그는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 종종 이런 초현실적 기분을 느낀다. 시선 끝에 빛이 닿는 찰나, 순식간에 주변을 둘러싼 오라가 변하고 새로운 공간이 된다. 그만의 마르시안스토리가 사진과 책 곳곳에 가득 담겨 있다.

마르시안스토리 서민규 뷰파인더 너머의 새로운 세상

마르시안스토리 서민규 뷰파인더 너머의 새로운 세상

1950년에 출간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화성연대기>는 화성으로 이주하고 정착한 지구인들의 삶을 담아낸다.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에피소드가 가득한 이 공상과학소설에 매료된 사람이 있다. 서민규 대표는 이 책의 이름을 따 출판사 ‘마르시안스토리Martianstory’를 만들었다. 그는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 종종 이런 초현실적 기분을 느낀다. 시선 끝에 빛이 닿는 찰나, 순식간에 주변을 둘러싼 오라가 변하고 새로운 공간이 된다. 그만의 마르시안스토리가 사진과 책 곳곳에 가득 담겨 있다.

해가 한가득 실내를 비추는 마르시안스토리 작업실 및 생활 공간 전경.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것처럼 집이 작품 같아요.

15년 전에 지은 집이에요. 과거 출판사를 운영하던 곳에 임대 문제가 있었던 탓에, 절대 쫓겨나지 않을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건축을 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집을 지었죠. 지하와 1층은 작업실, 2층은 가정집으로 사용 중이에요. 빛이 한가득 들어오는 통창과 집 안 곳곳에 놓인 나무 소재의 가구가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죠. 날씨 좋을 땐 야외에서 작업하려고 야외 공간도 만들었어요. 이곳은 우리 가족만의 공간은 아니에요. 이웃도 한 번씩 초대하고, 소소한 공연도 열어요. 작업물을 보고 싶은 분이라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곳이죠.

‘마르시안스토리’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80여 권의 아트북을 출간했어요. 해외 출판물을 보면 항상 다양한 인쇄 기법에 눈이 가고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는데, 마르시안스토리도 책 콘셉트에 맞는 다양한 인쇄 기법을 시도하더라고요.

다양한 인쇄 기법을 시도할 때, 기획·디자인·해석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지만 결국 중요한 건 실현 가능성이에요. 원하는 대로 제작할 수 없어서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인쇄를 쉽게 생각하는 분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작업을 해석할 줄 알고, 그에 맞는 잉크를 조합하고 개발해 사용하는 분판Seperation 전문가가 있어야 가능해요. 감탄이 절로 나오는 해외 출판물을 보면 그 작업을 맡은 분판 전문가가 항상 있어요. 우리나라는 전무하다고 보시면 돼요. 저도 6~7년 전 즈음 모든 걸 체념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분판 전문가인 유화컴퍼니의 유화 대표를 만났죠. 제가 원하는 바를 그대로 구현해주는 분이에요. 전문가를 만나니 점점 더 욕심도 생기고, 다양한 콘셉트와 인쇄 기법을 시도하게 됐어요.

작업실에는 마르시안스토리 출판 서적은 물론 다양한 아트 서적이 빼곡히 자리한다.

손으로 한땀 한땀 아트북의 이음새를 매만지는 서민규 작가.

매번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텐데, 기획 단계에서 어떤 부분을 가장 고심하나요?

저는 약간 청개구리 같은 심보가 있어요. 일반적인 책을 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고, 다른 작업자와 차별화된 해석을 하고 싶거든요. 치밀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고 제 의도대로 즉흥적으로 하는 편이라 협업하는 작가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전과 다른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 해요. 손으로는 사진을 찍고 있지만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할까, 어떻게 그 안에 담긴 가치를 끌어낼까 생각하죠. 그리고 쉽고 직관적이기보다 불편함이 있는 작업물을 만들려고 해요. 그 미묘한 불편함이 기획 의도와 밸런스가 맞아떨어질 때 엄청난 쾌감을 주거든요. 그 불편함을 통해 독자가 자유롭게 해석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봐요.

그만큼 마르시안스토리에서 출간하는 아트북은 이음새가 좋고, 기법도 독특하다는 평이 자자해요.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다 소개하고 싶지만, 하나만 꼽자면 박명래 작가의 <Photographs>이에요. 8x10인치 필름을 사용하여 대형 카메라로 작업을 하는데, 이런 카메라는 특유의 톤과 웅장한 멋이 있지만 인쇄물로 담아낼 때 그 느낌이 온전하지 않다는 점이 늘 아쉬웠어요. 그러다 유화 대표님과 처음 협업하며 흑백 별색 4도로 인쇄를 했죠. 인쇄물을 보는 순간 벅차오르던 그 희열과 감동을 잊지 못해요. 사진이라는 예술 자체는 이미 출발점이 복제의 개념이라 오리지널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책의 완성도가 채워지면 오리지낼리티로서 가치가 올라가고 대중성까지 갖춰 사진집으로 소장 가치가 생기죠.

서민규 작가는 쉽고 직관적이기보다 불편함이 있는 작업물을 만들고자 한다. 불편함을 통해 독자가 자유롭게 해석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보는 것.

마르시안스토리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사진가이기도 한 서민규.

아트북을 작업하면서 틈틈이 <리트머스 스토리LITMUS STORY>라는 잡지도 발행하고 있어요. 벌써 4권이 나왔네요?

아트북을 제작하다 만난 작가 중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분들이 작업에 점점 흥미를 잃고 작가의 길에서 멀어지는 걸 목도하는 경우가 잦았어요. 안타깝죠. 그래서 꾸준히 작업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와 원동력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2016년도부터 비정기 간행물인 ‘리트머스 스토리’를 시작했어요. 저를 제외하고는 매번 참여 작가가 달라져요. 소개하고 싶거나, 한창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을 모아서 시너지도 내려고 해요. <리트머스 스토리>를 통해 출판과 동시에 전시를 진행하면서 가시적 결과물로 작가들에게 힘을 주려고 하죠.

그렇다면 리트머스 스토리에는 주로 어떤 테마를 담나요?

주제를 따로 정해두진 않아요. 작업자들이 가지고 있는 단편들을 엮어놓은 단편집이라고 보시면 좋을 듯해요. 사진 작업을 하다 보면 장편과 단편으로 나뉘는데, 단편은 세상에 꺼내 보이기가 힘들고 묻어두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단편 사진과 함께 사진과 어울리는 시나 짧은 글을 담아요. 다른 설명 없이 사진과 글 몇 줄만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선 불친절하게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대다수 작가가 세상을 해석하는 자신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품이 사회에 어떤 영향이 끼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거든요. 저는 독자보다 제작자 입장에서 그걸 재해석해서 전달하려고 해요.

고양이가 유유히 사진, 아트북, 카메라가 있는 공간을 누비고 있다.

한 달 중 반은 대구에서, 반은 제주에서 지낸다고 들었어요. 사진을 찍고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대구’라는 도시와 ‘제주’라는 섬에서 각각 보고 느끼는 점이 다를 것 같아요.

일단 대구에서는 버려지거나 파괴된, 이른바 개발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시선이 가요. 인간이 자연에 개입한 흔적들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할 순 없지만, 그 방치된 듯한 느낌이 계속 절 끌어당겨요. 그래서 대구는 주로 외곽 지역을 찍고 다녀요. 외곽 지역 대부분은 한 번씩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시내와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은데, 분위기가 확 달라지거든요. 그런 이질적인 느낌이 좋은가 봐요.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갈망일까요, 아니면 무의식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 살던 곳에 대한 추억일까요?

어릴 적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대구 안에서도 시골 출신이에요. 집성촌에서 살다가 학교에 다니면서 대구 시내로 유학을 온 셈이죠.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져서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느낀 이질감이 지금의 감성을 키워준 듯해요. 상투적인 말일지 모르지만 도시가 지닌 약간의 쓸쓸함, 냉랭함, 칙칙함, 차가움에 제 의식과 감성이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외부의 또 다른 작업실과 같은 공간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서민규 작가.

그에 비해 제주에서 찍은 사진은 따뜻한 풍경이 많아 보여요. 어떤 순간에 셔터를 누르게 되나요?

사진은 일단 빛이 중요하잖아요. 장소가 대구든 제주든 저에겐 크게 차이가 없어요. 그 공간에 빛만 존재하면 해석이 되기 때문에, 빛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을 담죠. 지금 제주 산방산의 동네 골목 어귀를 무대로 4년째 사진 작업을 하고 있어요. 빛이 들어오는 한 공간을 지속적으로 찍는 거예요. 빛의 변화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니 너무 재밌어요. 이제 됐다 싶을 때까지 계속 찍어보려고요.

올해 마르시안스토리의 행보가 궁금해지네요.

2023년 봄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게 있어요. 사진은 서구에서 온 예술이잖아요. 이 서구 예술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뿌리를 내려 이어오게 되었는지 쭉 탐구했어요. 그러다가 한국 최초로 예술 사진 전람회를 개최하신 ‘무허 정해창’ 선생님의 사진을 보게 됐죠. 100년 된 사진이에요. 이분의 작품이야말로 우리의 뿌리구나 싶더라고요. 여기에 동시대를 사신, 계몽을 이끌었던 ‘상허 이태준’ 선생님의 글이 절묘하게 어울리더라고요. 유족분들을 만나 동의를 얻은 후 진행하고 있는데 사진을 복원한달까, 다시 얻는달까? 정말 어려운 작업이지만 박명래 작가와 유화 대표님과 함께 준비하고 있어요. 그 결과가 저 역시 기대됩니다.

Maker's 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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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시안스토리 서민규 대표가 자신하는 아트북 3선

공지수, Till we have faces

에는 음악가, 사진가, 이발사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사회와 공동체 내에서 짓게 되는 표정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셀 수 없이 많다. 공지수 작가는 그중에서도 흔히 얼굴을 통해 드러나는 표정이 아니라 뒷모습에 담긴, 온몸으로 내비치는 표정에 주목한다. 무언가에 깊이 몰입하거나 무의식 상태에 있을 때 비로소 몸 곳곳으로 퍼지는 이러한 표정을 통해 한 사람의 진심 어린 순간을 포착한다.

이태제(TEYÉ), MY WORLD(S)

이태제 작가는 2019년부터 갈리시아에 체류하며 셀타족 고대 마을과,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대물림해 내려오며 몇천 년간 이어져온 그들의 전통, 그리고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관찰해왔다. 셀타족 후예를 배우자로 맞아 살아온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전통과 함께하는 삶의 경이로움, 개인과 민족의 정체성,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의미를 돌아보고자 한다.

LITMUS STORY ISSUE 04

리트머스스토리는 아날로그 필름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온 작가들을 소개하는 마르시안스토리의 비정기 간행물. 서로 다른 시선을 지닌 사진가 4명(앨런 에글린턴, 박상용, 박재현, 서민규)의 의 작품과 에밀리 디킨슨(파시클출판사)의 시가 실려 있다. 2023년 3월 대구 ‘GOOD SPACE’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