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원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

2022년 12월 15일 영화감독 감정원의 첫 장편영화 <희수>가 정식으로 개봉했다. 감정원 감독은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영화 <희수>를 전국 독립영화관에 직접 배급하면서 협동조합 ‘컨티뉴이티Continuity’를 설립했다. 영화 <희수>는 정식 개봉 전인 2021년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한 후, 평창국제평화영화제·서울국제영화제·대구여성영화제 등 국내 영화제를 통해 먼저 관객을 만났다. 반응은 뜨거웠다. 영화감독 감정원은 연출가로, 스태프로,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으로 오랫동안 대구에서 영화 일을 해왔다. <희수> 역시 대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희수>는 대구 비산동 염색공단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희수’의 이야기다.

감정원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

감정원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

2022년 12월 15일 영화감독 감정원의 첫 장편영화 <희수>가 정식으로 개봉했다. 감정원 감독은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영화 <희수>를 전국 독립영화관에 직접 배급하면서 협동조합 ‘컨티뉴이티Continuity’를 설립했다. 영화 <희수>는 정식 개봉 전인 2021년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한 후, 평창국제평화영화제·서울국제영화제·대구여성영화제 등 국내 영화제를 통해 먼저 관객을 만났다. 반응은 뜨거웠다. 영화감독 감정원은 연출가로, 스태프로,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으로 오랫동안 대구에서 영화 일을 해왔다. <희수> 역시 대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희수>는 대구 비산동 염색공단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희수’의 이야기다.

영화 <희수>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첫 장편영화라고 알고 있는데, 이번에 영화 <희수>를 전국 독립영화관에 배급하면서 협동조합 컨티뉴이티를 설립했다고요.

영화를 주제로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대구를 기반으로 영화 작업을 하는 동료들과 함께 협동조합 컨티뉴이티를 설립했습니다. 영화 <희수>도 컨티뉴이티를 통해 직접 배급을 시도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홍보가 고민이었는데, 마침 예전부터 인연이 있던 유지태 배우가 도움을 주었죠. 서울 마포구에 인디스페이스Indiespace라는 국내 최초의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이 있는데요, 거기에서 유지태 배우가 2012년부터 꾸준히 ‘유지태와 함께 독립영화 보기’라는 독립영화 상영회 겸 토크를 열어요. 영화를 상영한 후 <희수>의 주역인 공민정·강길우 배우와 영화에 대해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 대구에 하나밖에 없는 독립영화 전용관이기도 하죠. 오오극장에서도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에 대해 2023년 연말까지 1년 동안 상영하기로 약속해주었어요. 많은 분이 독립영화 배급에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셔서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는 입장에서 큰 힘이 됐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협동조합 컨티뉴이티를 통해 <희수>를 전국 독립영화관에 배급했어요. 많은 관객을 만났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대구 염색공단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인데, 사실 가볍지 않은 주제예요. 영화 <희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3호선 지하철을 타고 공단역을 지나다가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보았어요. 대구 비산동 염색공단이었죠.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찾아가 보지는 않았어요. 문득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희수는 사실 제 친구 이름이에요. 그 친구가 언젠가 제게 “이렇게 일만 하다가 죽으면 억울하겠다. 근데 난 죽어서도 일만 할 것 같아.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이라”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비산동 염색공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희수가 제게 했던 이야기, 두 장면이 겹쳐지면서 영화 <희수>가 시작됐어요. 낮에는 협회 업무를 보고, 저녁에는 시나리오를 썼어요. 하루에 한 신은 꼭 쓰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2019년 처음 시행한 지역 영화 제작 지원 사업에 <희수>가 선정되었고, 겨우 프로덕션(제작)에 들어갔죠. 예산이 워낙 적어서 시간을 절약해야 했어요. 그래서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배우나 스태프와 함께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나눴습니다. 그때 다 같이 한 말이 기억에 남아요. “촬영 시작하면 우리도 희수랑 같이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임하자”라고 했죠.

감독님 역시 대구의 젊은 여성노동자예요. 감독님께 <희수>는 어떤 의미인가요?

<희수> 시나리오를 작업하면서 노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죽어서도 일만 할 것 같다던 제 친구 희수도 떠올랐고요.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스무 살 초반부터 현장에 있었고, 고단한 줄도 모르고 ‘영화 노동’을 하던 제 모습을요. 내 노동에도 가치가 있을까, 왜 노동에는 급이 나뉠까, 내 노동 또한 귀한 것인데···. 일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한 기억이 납니다. 영화 속 희수는 매일 공장에서 하는 체조조차도 열심히 하는 인물이에요. 일은 물론이고요. 희수는 너무나도 살고 싶었을 거예요. 사랑도 하고, 여행도 가고. 성실한 희수라면 분명히 자기 인생을 잘 살아냈을 거예요. 영화가 완성되고, 관객을 만나면서 새삼 깨달은 게 있어요. 영화 <희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어느 젊은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제 이야기기도 하고, 결국엔 우리 모두의 이야기죠.

그럼에도 대구에서 영화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죠. 대구에도 영화에 대한 교육과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을 뿐, 막상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 처음 접한 교육기관이 대구영상미디어센터였어요. 그곳에서 운영하던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을 통해 영화 제작에 대한 기본기를 익히고, 여러 동료를 만났어요. 제겐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죠. 지금은 그때보다 더 다양한 교육을 들을 수 있어요. 대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는 4기째 대구영화학교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영화 인력을 배출하고 있어요.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대구단편영화제에서도 시민을 대상으로 한 영화 제작 워크숍이나 영화 이론 강좌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언제든 문의해보시기 바랍니다. 꿈을 향한 문은 항상 열려 있어요.

오랫동안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에서 근무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은 ‘대구단편영화제DIFF’를 개최하는 대구단편영화제 사무국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했다고요.

올해로 23회를 맞은 대구단편영화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독립영화인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역 독립영화의 상영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영화제입니다. 대구뿐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영화인과 관객이 찾는 곳이죠. 주 상영관은 독립영화 전용관인 오오극장이고, 더 많은 시민 관객을 만나고자 CGV·만경관 등 상영관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습니다. 대구는 인구나 도시 규모에 비해 문화 관련 사업에 지원을 많이 하지 않은 편이에요. 그래서 지역 소상공인과 함께 ‘동네 가게 스폰서’라는 스폰서십을 만들었습니다. 영화제를 통해 동네에 있는 가게들을 소개하고, 관객에게 작은 혜택을 주는 방식이에요. ‘디프앤포스터diff n poster’라는 부대 행사도 진행하는데요, 영화제 상영작과 디자이너를 매칭해 영화 포스터 형식의 창작물을 제작·전시합니다. 오오극장 상영관 앞에 삼삼다방이라는 작은 카페 공간에서 시작해 오오극장 주변 카페나 문화공간으로 전시를 확대 운영하고 있어요. 직간접적으로 영화제에 참여하는 모든 분에게 영화적 순간을 안겨주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인뿐 아니라 모두에게 뜻깊은 행사가 되었으면 해요.

컨티뉴이티는 영화 제작·상영·배급을 통해 영화와 관련한 활동을 하는 협동조합이잖아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 컨티뉴이티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궁금합니다.

촬영할 때 쓰는 ‘콘티’라는 용어는 사실 ‘컨티뉴이티’를 줄인 말이에요. 본래 컨티뉴이티는 ‘연속성’, ‘지속성’을 의미해요. 영화 관련 활동을 하는 협동조합 이름이기도 한데, 뜻있는 활동을 오랫동안 지속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지었죠. 컨티뉴이티는 ‘독립영화 장르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보자’, ‘다양성 영화의 상영 기회를 늘려보자’라는 두 가지 큰 지향점을 지니고 있어요. 다양한 국적, 장르, 저예산 같은 이유로 소수성을 표방하는 영화 범주를 다양성 영화라고 해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다큐멘터리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또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아요. 창작자가 창작물을 선보일 기회를 얻는 일, 소비자가 거대 자본의 개입을 떠나 자유롭게 문화를 향유하는 일은 우리가 가진 중요한 권리예요. 같은 맥락으로, 어떻게 하면 지역에서 생산하는 영화가 균등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시 영화 <희수>로 돌아와서, 사진책 출판사 ‘사월의눈’과 영화 <희수>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월의눈과 함께 영화 스틸컷을 재편집해 사진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영화에는 많은 요소가 혼합돼 있잖아요. 영화 속 재료를 상영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활용해보고 싶었어요. 사월의눈은 대구에서 사진책을 펴내는 출판사인데요, 사진·텍스트·디자인이 사월의눈이 추구하는 세 가지 키워드예요. 영화는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디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니까요. 영화를 매개로 사진책을 만들면 흥미롭지 않을까 제안했습니다. 영화처럼 사진책 <스틸컷, 희수>도 서로 다른 세 가지 시간대영화에서는 희수와 연인 학선의 일상적 이야기, 횟집 일을 하며 혼자서 여행 중인 희수, 쓸쓸히 희수의 흔적을 뒤쫓는 학선이라는 세 가지 시간대가 교차한다로 구성되어 있어요. 또 영화에는 최종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대사나 영화와 함께 곱씹을 만한 글이 수록되어 있어 영화만큼이나 볼거리가 풍성한 책이 될 것 같아요. 말하자면, 사진책이면서 영화 <희수>의 또 다른 해석이기도 한 거죠.

Maker's 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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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원 영화감독의 나를 만든 영화 3

<가리베가스>(2005), 김선민 감독

가리베가스는 ‘가리봉동’과 ‘라스베가스’를 합친 단어다. 실제 구로공단에서 일한 적이 있는 김선민 감독은 고향과도 같은 가리봉동의 변화를 몸소 겪으며 영화에 노동자들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2005년 서울 구로공단의 선화와 2021년 대구 염색공단의 희수는 어딘지 모르게 닮은 듯하다. (ⓒ 김선민)

<그림자도 없다>(2011), 최창환 감독

감정원 감독에게 이 영화는 ‘지역 독립영화계의 출발의 순간'과 같다. <그림자도 없다>는 대구를 기반으로 활발하게 독립영화 작업을 이어가는 최창환 감독의 초기작이다. 대구역 건너편 구도심, 동성로와 북부정류장을 배경으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켄 로치Ken Loach나 다르덴 형제Jean-Pierre Dardenne, Luc Dardenne의 작품이 떠오르는, 굉장히 충격적이고 서늘한 영화다. (ⓒ 최창환)

<수성못>(2018), 유지영 감독

수성못은 대구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공간이다. 영화 속 수성못은 대구의 청춘(주인공 희정)이 처한 현실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소다. 희정을 연기한 배우 이세영의 현실적 연기 덕에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다. 유지영 감독의 첫 장편영화기도 하고, 감정원 감독이 직접 조감독으로 참여한 영화이기에 더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 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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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
  • Edit(Intern)Minho Koo(영남대학교 대학원 시각디자인학과) PhotographYoungmin B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