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흰 천에 물드는 삶의 색채
현대와 전통을 결합한 자연염색은 세계를 물들이고 있다.
정원에서 줄기가 울창한 식물이 자라나고, 눈길이 닿는 선반 곳곳에 화병이 가득하다. 대구 북성로에 안온하게 자리한 ‘사이에 포터리’ 공방이다. 꽃과 나무를 곁에 둔 채 엄마는 옻나무 수액을 도자에 바르고, 딸은 공원의 풀을 도자에 그린다. 자연을 빚어내며 매일매일 성실히 보내는 이들. 도예를 공부한 엄마와 딸이 만나 스튜디오를 꾸린 지 어언 8년째다. 일과 일상이 연결된 공방에서 이들은 도자를 만들고 음식을 차려 먹으며 계절을 지낸다. 그 사이, 엄마 이미옥과 딸 김민지 사이에 도자가 피어난다.
정원에서 줄기가 울창한 식물이 자라나고, 눈길이 닿는 선반 곳곳에 화병이 가득하다. 대구 북성로에 안온하게 자리한 ‘사이에 포터리’ 공방이다. 꽃과 나무를 곁에 둔 채 엄마는 옻나무 수액을 도자에 바르고, 딸은 공원의 풀을 도자에 그린다. 자연을 빚어내며 매일매일 성실히 보내는 이들. 도예를 공부한 엄마와 딸이 만나 스튜디오를 꾸린 지 어언 8년째다. 일과 일상이 연결된 공방에서 이들은 도자를 만들고 음식을 차려 먹으며 계절을 지낸다. 그 사이, 엄마 이미옥과 딸 김민지 사이에 도자가 피어난다.
김민지 그런가요?(웃음) 사실 처음 스튜디오를 꾸릴 때는 지금보다 훨씬 작은 공간이었어요. 도자를 배우고 싶어 하는 수강생이 늘어나면서 저희가 도자를 만들 작업 공간이 부족하더라고요. 엄마와 제가 함께 일한 지 2년쯤 지났을 때 다양한 도자를 만들며 실험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공방 규모를 좀 더 키워 이곳으로 왔어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건물이었는데, 공터에 나무를 심고 연못을 만들면서 작은 정원도 꾸렸어요. 물레도 두고, 도자를 굽는 가마도 설치했고요.
이미옥 먼저 ‘사이에 크래프츠Saie Crafts’는 제가 운영하는 라인인데요, 도자 표면에 유약을 대신해 전통 옻칠을 하는 도태칠기 기법을 사용하거나 장작가마로 도자를 굽는 등 클래식한 방식으로 진행해요. 특히 도태칠기 작업으로 옻칠과 도자기가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하죠. 라 엔살라다La Ensalada’는 색이 다른 흙을 결합해 패턴을 만드는 연리문 작업으로 완성해요. 흙에 안료를 섞어 색소지를 만들고, 서로 다른 색소지를 이어서 패턴을 만들죠. 작업 과정이 만만치 않아요. 언젠가 겨울에 연리문 작업을 했다가 도자의 3분의 1 정도만 온전히 나온 기억도 있죠. 하지만 늘 새로운 패턴이 생겨나고, 색감의 조화가 의외롭게 다가올 때의 낯섦이 좋아요.
김민지 ‘로지 그로브Rosie Grove’는 주로 손으로 흙을 성형해서 만드는 핸드빌딩 기법을 사용하는데요, 때로는 물레를 이용해 일일이 빚기도 하죠.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색과 형태를 도자에 녹이고자 해요. 세 라인의 작품은 대부분 하나씩 만드는데, 가끔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밖으로 내보내기 아까울 때가 있어요. 각각 사진을 찍고 설명을 달고 홈페이지나 SNS에 업로드하는 데 품도 꽤 들고요. 사실 도자를 만들 때 안정적으로 대량생산을 하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저희 마음이 닿는 것은 언제나 늘 다른 방향으로 튀는 여지가 있는 작품이에요. 매번 다양하게 시도하면서 독특한 형태를 탐구하는 것도 좋고요. 틀에 갇히는 상황이 오면 답답하더라고요.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의도치 않은 발견을 하고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기다리면서요.
이미옥 기능성과 유용성을 꼽을 수 있겠네요. 특히 식기는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없이 쓸 수 있는가를 고민해요.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상차림을 했을 때, 저희가 만든 그릇과 직접 만든 음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주변에 대접할 때도 일부러 저희 그릇을 꺼내 쓸 수 있도록요.
김민지 그렇죠. 특히 사이에 크래프츠는 하이엔드 라인으로, 가격이 꽤 높은 편이라 도태다완 같은 경우는 오브제 역할을 바라며 구매하는 분도 많아요. 그래도 나중에 직접 먹고 마시면서 일상에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거죠. 그래서 아예 식기로서 불가능한 유약은 배제하고 작업하는 편이에요. 일상에서 사용하기 쉽도록 흙에 무게나 그립감까지도 고려하고 있죠. 도자를 들었을 때 손에 착 감기게끔요.
김민지 누구든 하던 일을 계속하기만 해도 일정 수준까지 다다를 수 있잖아요. 그 수준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일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엄마는 멈추지 않아요. ‘이쯤 되면 엄마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셨겠지’ 하고 짐작할 때쯤 새롭게 도전하세요. 그중 하나가 옻칠 작업이죠. 도예만 해도 힘든 일인데, 옻칠까지 한다는 게 사실 쉽지 않거든요. 두 분야를 동시에 도전한다고 하니까 솔직히 말리고 싶었어요. 몇 달 전에는 엄마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크게 다치셨거든요. 그때 문화재수리기능자 칠공 시험이 있었는데, 엄마가 입원한 상황에서 시험장에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시험을 쳐도 자격증을 얻기가 굉장히 까다로운데 말이죠. 결국 부상 투혼 끝에 자격증을 따셨어요. 정해진 틀에 갇히지 않고 어려운 자격증도 단숨에 따니까 도예가로서 엄마를 바라볼 때 존경스럽죠.
이미옥 딸아이는 감각을 타고났어요. 도자기를 보는 시선도 남달랐고, 도자를 빚는 기법을 습득하는 것도 유달리 빨랐죠. 이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면서 작품 활동이 가능한 지점까지 올라왔더라고요. 딸이 한낮의 햇살이 비치는 공원에 앉아서 이파리가 흔들거리는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는데요, 그때 본인이 받은 감상을 고스란히 도자에 담아내더라고요. 자신만의 작품을 꾸릴 수 있는 소질이 있는 거죠. 나중에 제가 없더라도 본인이 바라본 세상을 작품에 담으면서 앞으로 더 나아가길 바라요. 행여 아쉽더라도 놔줄 때는 놔줘야죠.
김민지 맞아요. 처음에 같이 일할 때는 갈등이 많았어요. 집에서도 다투고, 작업실에서도 다투고···. 아침저녁으로 피 터지게 싸웠죠.(웃음)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엄마와 저 사이에 세대차가 있잖아요. 어린 마음에 엄마가 하는 방식이 구식으로 보일 때도 있었어요. 지금 8년 전을 돌이켜보면 싸움의 모든 원흉은 저였던 것 같아요. 엄마가 많이 양보해주셨죠. 제가 유연성이 엄마만큼 뛰어나지 못한데, 엄마는 낯선 것을 잘 흡수하는 편이라서 제가 보고 배우는 점도 많았고요.
이미옥 어릴 적부터 옻칠 작업한 물건을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좀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에 가서 옻칠을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죠. 최근에는 소반의 선과 용도는 지키되, 도자에 옻칠과 나전을 접목한 도태칠기 작업을 했어요. 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색과 무늬, 형태를 소반에 담아냈죠. 예전에는 소반을 상으로만 사용했지만, 오늘날에는 트레이 용도로도 쓰잖아요. 옻칠의 빛과 도자의 멋을 조화롭게 가꾸면서, 사람들이 더 쉽게 일상에서 쓸 수 있는 방식을 생각했어요. 지금은 전통에 갇히지 않고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해요.
김민지 우연히 작은 한지 조각에 수채화를 그렸는데, 색이 몽글몽글하게 번지는 오라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산문집을 쓴 황수영 작가는 친구로서 오랫동안 곁을 지키던 사람이었고, 문학출판사 ‘별빛들’에서 의뢰해 처음 표지 작업을 했죠. 제가 꾸준히 종이 매체에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아니라 조금 쑥스러웠지만, 조금씩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어요. 도자에 물감을 입히고 가마에 구웠을 때 제가 바라던 모습과 완성된 작품 사이에 간극이 있거든요. 처음 바라본 아름다움을 계속 붙잡아두고 싶은데 말이죠. 반면 붓을 잡고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그 아름다움이 바로 나타나잖아요. 상대적으로 빠르게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면에서 한지에 수채화를 그리는 작업이 주는 쾌감이 있어요.
김민지 네. 대구 달성습지를 종종 찾는데요, 올해 봄부터 가을까지 도시공원 기록 활동 프로젝트에 참여해 제가 바라본 달성습지의 풍경을 도자로 표현하는 작업을 했죠. 대구의 크고 작은 공원을 5명의 작가가 문화 기록으로 아카이빙하는 활동이에요. 공원을 산책하며 목격하고 감각한 것을 작품에 담았죠. 달성습지가 원래 갈대밭으로 유명해서 가을에 주로 찾았어요. 올봄에 남편과 엄마와 셋이 나들이를 갔는데, 제가 달성습지의 진짜 모습을 반도 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여러 계절 동안 천천히 달성습지를 스케치하며 저에게 다가온 자연의 찰나를 붙잡으려고 했어요.
김민지 사소한 것도 괜찮을까요? 저는 밥은 무조건 편안한 분위기에서 잘 먹으려고 해요.(웃음) 저를 대접하듯이요. 제가 만든 도자에 음식을 정갈하게 담아서 먹죠. 가끔은 제 동료나 친구가 운영하는 가게에도 가요. 봉산동에 사진책 서점 ‘낫온리북스’가 있는데, 운영자가 친구이자 좋아하는 사진가예요. 낫온리북스의 사진책 큐레이션을 좋아해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종종 소소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에너지를 얻어요. 동문동 독립 서점 ‘고스트북스’에 가서 책들을 보면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요.
이미옥 저는 공방에서 일상을 누릴 때 가장 편안하지만, 가끔은 딸과 함께 차를 끌고 대구 시내로 나가요. 둘 다 식물을 좋아해서 대구 롯데백화점 뒤편에 자리한 꽃시장에도 종종 가고요. 팔공산 밑에 있는 화훼단지에 가서 오랜 시간 머물러 있기도 해요. 그렇게 식물과 함께하면서 쉬다 보면 다시 공방에 왔을 때 도자를 만들 기운이 나더라고요.
이미옥 저는 대구에서도 쉼 없이 바뀌는 도자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면서 작업을 이어 나가고 싶어요. 서울이든 대구든 지역적 차이 없이 우리가 만드는 도자는 늘 새로웠으면 해요.
김민지 대구에서 무언가를 이뤄보자는 거창한 꿈은 없어요. 하지만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가는 건 어떨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여러 번 던져봤는데, 저는 대구의 느슨함과 여유로움이 저에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대구에 있던 브랜드도 최종적으로 서울로 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지역에서도 누군가 작업을 꾸준히 이어간다는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다른 분들도 대구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고 느꼈으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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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아름다움이 깃든 사이에 브랜드 라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