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20년을 살았지만소설가 지돈 씨의 일일 (1) | 정지돈
"낯선 도시를 방문할 때 내가 제일 먼저 찾는 장소는 미술관이다."
‘책방이층’이 1층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낀 황망함이란. 나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책방 주인의 말에 따르면 주소에 “대구광역시 달구벌대로393길 48 1층 좌측”이라고 써놓았음에도 사람들은 고개를 쳐들고 한참 동안 건물 앞을 서성인단다. 그러면 주인은 책방을 코앞에 두고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반쯤은 미안한 시선으로, 반쯤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지켜본다고.
“분명 공지에도 ‘1층, 1층입니다’라고 쓰는데, 왜 확인을 안 할까요?”
주인은 잘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내게 말했다. ‘그야 책방 이름이 책방이층이니까 그렇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겨우 삼켰다. 책방 주인의 의문에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지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책방이층이 1층에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혹시나 해서 왜 이름이 ‘책방이층’인지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원래 2층에 있었어요. 그런데 1층으로 이사했죠.”
음, 그 이유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하지만 이층이 단순히 높이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다를 이異 자를 쓰면 새로운 의미가 생긴다. 책방 계정이나 이메일 아이디도 ‘anotherbooks’다. 이쯤 되면 1층에 있는 서점이라도 2층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처음에는 2층에 있었지만.
대구의 많은 서점 중 특별히 책방이층을 좋아하는 이유가 단지 조금 삐딱한 이름 때문만은 아니다. 책방이층은 이름뿐 아니라 서점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가 조금 삐딱하다. 우선 위치. 책방이층이 있는 곳은 대신동이다. 서문시장과 계성초·중·고 사이에 자리한달까. 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위치다. 책방 이층이 있는 곳엔 아파트 말고 이렇다 할 무언가가 없다.
휴일 여름 낮, 서문시장 방면에서 느린 걸음으로 책방이층으로 향했다. 악명 높은 대구의 여름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골목은 어느 시골길의 풍경처럼 고요했다. 상점들은 셔터를 내렸고, 몇몇 노인은 골목에 내어놓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옛 추억을 곱씹었다. 낡은 간판의 목욕탕만 유일하게 장사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왜 북적이는 중앙로나 교동, 봉산 문화 거리 등에 서점을 열지 않은 걸까.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심지어 책방 주인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물어보니 그냥 여기에 자리가 났다고···.
책방이층에 있는 책들도 조금 삐딱하다. 이곳에 사람들이 익히 찾는 베스트셀러는 한 권도 없다. 인스타그래머블하고 마음에 위로를 건네는 종류의 책도 없다. 규모가 작은 서점이라고 해서 한 장르에 집중하거나 독립 출판물을 취급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책방 주인의 관심과 안목에 따라 선별된 다양한 분야의 책이 서가에 진열되어 있다. 문학, 철학, 예술, 에세이, 미학, 어린이책까지. 그러나 그 풍경이 난삽하거나 혼란스럽지 않다. 종류가 전혀 다른 책들 속에서 어떤 결이 느껴진다. 어떤 결? 굳이 표현하자면 책을 진정 좋아하고, 진짜 읽는 사람의 결이랄까.
대구 중구 대신동에 위치한 독립서점이자 큐레이션 서점. 2015년에 시작해 책방 주인의 관심과 안목에 따라 문학·비문학·그림책 등 선별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소개한다. 이름과 달리 1층에 자리한다.
대구시 중구 달구벌대로393길 48 1층 좌측
그렇지만 이런 결이 대구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미지수다. 솔직히 책방이층이 장사가 잘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내가 방문한 시간 동안 책방에 손님이 오긴커녕 거리에 차 한 대 지나가지 않았으니까. 얼마 전까지 임시 휴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서점을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도 못 벌고, 에너지는 들고, 누군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이에 대한 책방 주인의 대답 역시 무망하다.
“그냥··· 왜 할까요?”
‘선생님, 그걸 저한테 물으면 안 되죠’라는 대답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언젠가 사뮈엘 베케트는 “이 결핍의 시대에 시인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진짜 모르겠습니다!” 나 역시 비슷하게 대답할 것 같다. “인공지능 시대에 책방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진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조금 삐딱하게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그렇지만 조금 다른 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 제목은 “이봉 랑베르 인터뷰(다니엘 피르망DANIEL FIRMAN, paris art, https://www.paris-art.com/yvon-lambert/)”에서 인용
정지돈
소설가 정지돈은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여 년 전 대구를 떠나 현재 서울을 기반으로 소설과 산문을 쓴다.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내가 싸우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중편소설 <야간 경비원의 일기>, 장편소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모든 것은 영원했다>, <···스크롤!>, 산문집 <문학의 기쁨>(공저), <영화와 시>,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등을 썼다. 20세기에 도시를 걷고 사유한 소설가 구보씨가 있다면, 정지돈은 ‘21세기의 도시 산책자’로 종종 세계 도시의 곳곳을 걷고 산책하며 도시라는 말에 잠재된 무언가를 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