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와 스몰스Records in Daegu (1)|유지성
음악 신에 활기를 불어넣는 대구의 낯선 움직임.
“우리는 로컬에서 역사를 쌓아가려고 해요. 앞으로도요.” 작년 말 대구힙합페스티벌 여승현 대표를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대구에서 이것저것을 시도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올해 그는 그 약속을 벌써 지켰다. 2023년에도 대구에서는 대구힙합페스티벌이 열렸다. 여느 때처럼 양일간 2만 명이 넘는 관객이 찾았다. 매년 1,000명 정도 오는 외국인 관객도 올해는 2,000명이나 방문했다. 게다가 올해 역시 멜론 티켓 전체에서 한동안 판매율 1등을 차지했다. 2023 대구힙합페스티벌을 설명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올해에도’, 그리고 ‘올해는 더’.
2023 대구힙합페스티벌을 설명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올해에도’, 그리고 ‘올해는 더’.
올해도 대구힙합페스티벌을 향한 래퍼들의 애정은 이어졌다. 레디는 페스티벌의 오랜 역사에 존경을 표했고, 팔로알토는 올해로 10년째 출석 중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블라세는 처음 랩을 시작할 때부터 서고 싶은 무대였다고 했고, 로꼬는 올해 대구힙합페스티벌이 제작한 힙합 탄생 50주년 기념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래퍼들뿐 아니라 관객의 애정도 변함없었다. 작년에 이영지의 무대와 릴러말즈의 무대에 각각 올랐던 두 관객은 올해도 페스티벌을 찾았다. 그리고 작년처럼 이영지와 릴러말즈의 무대에 또 한번 올라 아티스트와 함께 공연(?)했다. 약속한 적은 없지만, 올해도 변함없이 모였다. 래퍼도, 관객도, 주최 측도 모두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대구힙합페스티벌에서는 이런 광경이 펼쳐진다.
올해 대구힙합페스티벌에서 내세운 슬로건은 (놀랍게도) ‘힙합 탄생 50주년’이었다. 힙합은 올해로 탄생 50주년을 맞이했다. 미국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움직임이 작년부터 시작됐다. 올해 그래미어워드에서는 아예 힙합 탄생 50주년 특집 무대를 편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대구힙합페스티벌이 기념 티셔츠까지 제작하며 힙합의 쉰 살을 축하하고 나선 것이다. 여승현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저희가 한국의 힙합 페스티벌 중 가장 오래됐잖아요. 그래서 어떤 의무감 같은 게 있었어요. 힙합이 탄생한 지 올해가 50주년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티셔츠도 만들었죠. 처음에는 아티스트와 스탭에게 선물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사람들의 요구가 많아져서 판매까지 시작했어요. 힙합 탄생 50주년을 페스티벌의 타이틀로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동의한다. 대구힙합페스티벌은
힙합 탄생 50주년을 정면으로 기념한 존재로
한국 힙합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동의한다. 대구힙합페스티벌은 힙합 탄생 50주년을 정면으로 기념한 존재로 한국 힙합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올해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지브라Zeebra는 이러한 명분으로 초청한 아티스트다. 사실 여승현 대표에게 지브라를 섭외하자고 제안한 건 필자였다. 과거의 우리는 앞서나가던 J-팝과 일본 힙합을 동경하며 자랐다. 그리고 지금의 세계는 K-팝과 한국 힙합을 주목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힙합 탄생 50주년을 맞아 아시아 힙합끼리 유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이런 맥락에서 아시아 최초의 랩 스타이자 현재 일본 힙합계에서 존경받는 베테랑인 지브라를 대구힙합페스티벌에 초청한다면 분명 의미가 클 것 같았다. 다행히 여승현 대표는 내 제안을 적극 수용해줬다. 그렇게 지브라는 올해 대구힙합페스티벌의 유일한 외국인 아티스트로 라인업에 올랐다.
2023 대구힙합페스티벌 무대 위의 지브라. 사진 제공 : 대구힙합페스티벌
지브라는 베테랑다운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물론 관객 중에는 지브라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1990년대 초에 데뷔한 지브라를 2000년대에 태어난 관객이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품격과 퀄리티는 전달되는 법.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인상 깊은 무대였다”라거나, “일본 아티스트였는데 다른 한국 래퍼보다 랩이 더 잘 들렸다”라는 리뷰가 인터넷에 올라왔다. 도쿄에서 직접 제작해 입고 왔다는, 대구힙합페스티벌의 기념 티셔츠와는 또 다른 지브라의 힙합 탄생 50주년 티셔츠도 이목을 끌었다. 공연을 마친 후 지브라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단한 공연이었습니다. 힙합은 올해로 탄생 50주년을 맞았습니다. 모두 당신들 덕분입니다. 이는 힙합 팬, 래퍼, 디제이, 댄서, 그라피티 아티스트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성과입니다. 힙합 탄생 100주년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또 일본에서 다시 만납시다. 힙합 안에서 함께합시다.”
“모두 당신들 덕분입니다.
힙합 팬, 래퍼, 디제이, 댄서, 그라피티 아티스트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성과입니다.”
문득 힙합 탄생 50주년을 슬로건으로 내세울 수 있었던 건 이 페스티벌이 ‘대구’ 힙합페스티벌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서울’ 힙합페스티벌이었다면 가치와 의미에만 올인(!)한 이 비상업적 문구를 페스티벌의 대표 슬로건으로 내세울 수 있었을까. 또 나는 힙합 탄생 50주년을 슬로건으로 내세울 수 있었던 건 이 페스티벌이 대구 ‘힙합’ 페스티벌이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이 페스티벌을 만드는 사람들은 힙합을 정말로 아끼고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몇 년째 대구힙합페스티벌을 돕고 있는 공연 기획자 최혜연HEYAN 역시 이렇게 말한다. “대구힙합페스티벌이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에 동의해요. 정말 힙합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대구힙합페스티벌은 어떤 다른 페스티벌보다 힙합 장르의 팬이 많이 찾는 페스티벌이거든요.”
“지방은 음악 페스티벌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예요.
그런데 이런 현실에서도 11년이나 페스티벌을
개최해오고 있으니 대단한 거죠.”
HEYAN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지방은 음악 페스티벌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예요. 지방에 사는 사람뿐 아니라 서울에 사는 사람도 관람하러 오게 만들어야 살아남죠. 그런다고 매년 흑자가 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이런 현실에서도 11년이나 페스티벌을 개최해오고 있으니 대단한 거죠. 한편으론 이런 현실이 관객 입장을 끊임없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도 같아요. 관객이 계속 오고 싶어 하는 페스티벌을 만들어야 지속 가능하니, 관객 입장에서 자꾸 생각해보게 되는 거죠. 일례로, 제가 알기로는 대부분의 페스티벌에서 스태프를 사전 교육하지 않아요. 그런데 대구힙합페스티벌은 스태프를 대상으로 사전 교육을 2회나 실시해요. 미리 업무 자료를 완성해서 팀별로 보내주죠. 이건 관객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스태프가 일을 잘하면 관객이 편해지니까요. 올해 관객 평가에서도 친절한 스태프가 많았다거나, 스태프가 대응을 잘해줬다는 피드백이 많았어요.”
“저희는 단지 페스티벌이 아니라
문화와 움직임을 대구에서 만들고 싶어요.”
여승현 대표는 아직까지도 인스타그램 DM에 답장하는 중이라고 한다.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에게 되물었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대구힙합페스티벌의 힘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됐다. 대구는 한국 힙합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중이다. “페스티벌과 관련해 사람들에게 DM이 많이 왔어요. 질문도 있고, 피드백도 있고, 소감도 있어요. 올해 페스티벌이 끝나고 지금까지 1만 개 이상의 DM에 답장을 했습니다. 저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조건 답장을 해드려요. 그러고 보니 답장 못 한 DM이 아직도 조금 남았네요. 사실 저희는 단지 페스티벌이 아니라 문화와 움직임을 대구에서 만들고 싶어요. 이제 ‘대구’ 하면 힙합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희는 대구힙합페스티벌 SNS를 힙합 소식을 전하는 매체로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SNS에 소식을 올리면 아티스트들 홍보도 될 테니까요. 만약 신인 래퍼에게 홍보 요청이 먼저 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당연히 무조건 업로드해줘야죠!”
Illustration | 힙합 탄생 50주년과 아시아 힙합의 유대의 아이콘으로서 올해 대구힙합페스티벌 무대에 선 아티스트 지브라.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외부 기고문은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시선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봉현
힙합으로 일 벌이는 사람. 2003년부터 음악에 관해 국내외에 글을 써 온 힙합 저널리스트이자 영화제를 열고 앨범을 만드는 기획자이다. 화제의 한국관광공사 힙합 영상을 기획하거나 김경주 시인, MC메타와 시와 랩을 연결하는 프로젝트 ‘포에틱 저스티스’를 진행하는 한편 카카오프렌즈 플레이리스트의 곡을 고르며 매일을 쌓아나간다. 대표 저서로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한국힙합 에볼루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