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 최은주 관장 대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다

“미술관이 시민들과 미술의 언어로 소통하고 사랑받기 위해선 다정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어야 한다”라고 대구미술관의 최은주 관장은 말한다. 미술관의 규모보다 미술관이 얼마나 지역민의 삶과 밀착돼 있는지, 지역민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그의 바람대로 대구미술관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전시 기획으로 가득하고, 대구의 얼을 귀하게 담아내며 시민들 마음속 깊이 소중한 지역 미술관으로 아로새겨지고 있다.

대구미술관 최은주 관장 대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다

대구미술관 최은주 관장 대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다

“미술관이 시민들과 미술의 언어로 소통하고 사랑받기 위해선 다정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어야 한다”라고 대구미술관의 최은주 관장은 말한다. 미술관의 규모보다 미술관이 얼마나 지역민의 삶과 밀착돼 있는지, 지역민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그의 바람대로 대구미술관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전시 기획으로 가득하고, 대구의 얼을 귀하게 담아내며 시민들 마음속 깊이 소중한 지역 미술관으로 아로새겨지고 있다.

2011년 5월에 개관한 대구미술관은 근대미술뿐 아니라 현대미술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한국 근대미술을 기획하려면 무조건 대구를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한국 미술사에서 대구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관장으로 재직한 10년 동안 한국 근대미술 관련 기획을 할 때마다 대구를 방문했어요. 대구는 선각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움직임이 항상 꿈틀거리던 곳이에요. 1922년 서예가 서병오 선생이 결성한 ’교남시서화회’부터 자발적인 문화 예술 활동을 전개했죠. 무엇보다 한국전쟁 이후 작품을 잃어버려 없어진 지역이 많은데, 대구는 피해가 덜해 소장가들이 보유하고 있던 중요 작가들의 작품이 잘 보존됐다는 점이 중요해요. 한국전쟁 당시 대구로 피란 온 예술가와 대구의 미술가들이 교류하면서 더욱 풍부한 미술 사조를 일궈냈고요. 근대미술뿐 아니라 현대미술사에서도 대구는 의미가 아주 큽니다.

2023년 1월까지 진행하는 <다니엘 뷔렌> 전시 모습 일부. 다니엘 뷔렌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조형 예술가다.

2019년에 임기를 시작하면서 대구미술관의 ‘전시 기획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전 세계 미술계는 매우 복잡다단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신예 스타 작가가 탄생하는가 하면, 거장이 영면에 들기도 하고, 새로운 사조가 드러나기도 하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창의적 소재를 끄집어내 고유하고 차별화된 것을 보여주는 일이 전시 기획이거든요. 대구미술관에 와 보니 전시 기획 부분이 아쉽더라고요. 우리 미술관에 적합한 소재를 발굴해내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시스템이 없으니 혼자만의 생각으로 끝나는 사례가 많았어요. 그래서 아예 ‘전시 회의’라는 판을 깔았죠. 기획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도 창출하고 기획안에 대해 서로 진단하고, 토론과 평가까지 가능하게 만들었어요. 시스템이 정착돼 벌써 2024년 기획까지 어느 정도 마무리한 상태입니다.

관장님이 생각하는 좋은 전시 기획이란 어떤 것인가요?

‘창의적인 기획’이에요. 창의라는 건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발현된다고 봐요. 지난해에 개최한 <때와 땅> 전시가 좋은 예죠. 질곡의 역사와 함께 한 시대를 일군 대구 미술인의 행적과 극복 과정, 그리고 그들이 꿈꾼 예술의 이상과 시대정신을 담고자 했어요. 이 전시는 대구의 지역성이 두드러지고 대구의 역사가 담긴 기획이기에 대구미술관만이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런 대규모 전시를 하게 되면 파생되는 기획이 무궁무진하거든요. <때와 땅> 전시 덕분에 캐나다 오타와 한국 문화원에서 이인성, 서동진, 전선택 3인의 작품전을 열게 됐어요. 대구 근대미술의 첫 해외 진출이라 감회가 더 새롭더라고요.

대구미술관 외관.

전시 기획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는 대구미술관.

팬데믹으로 인해 미술관의 장기간 휴관 등 위기를 맞았어요. 대구미술관은 이 시기를 어떻게 이겨내려고 했나요?

처음 겪는 재난이었다면 우왕좌왕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미술관에 재직하며 메르스, 신종플루, 세월호 등 많은 재난을 겪어봤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죠. 대구미술관은 오프라인 프로그램에 비해 빈약하던 온라인 프로그램을 확충하기 위해 곧바로 뛰어들었어요. 유튜브 채널에 ‘나의 예술세계’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죠. 작가가 직접 자기 예술 세계를 얘기하고 작업실도 공개하는 방식의 영상인데 지금까지 수십 명의 작가가 참여했어요. 미술 애호가들은 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고, 작가도 본인 아카이브를 형성할 수 있기에 뜻깊은 작업이었죠.

동시에 오프라인 콘텐츠 ‘몰입’도 만드셨네요.

실감형 몰입 콘텐츠인 ‘몰입’을 개발하는 일에 총력을 다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모 사업에 선정되면서 추진한 콘텐츠인데, 대구미술관 소장품을 활용해 총 6편을 제작했어요. 3차원 홀로그램, 상호작용, 인공지능 등의 기술로 작가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거죠. 사방이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들어가 작품의 특정 요소들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벽면 터치 반응형 기술로 터치할 때마다 까맣게 먹이 번지기도 하고, 사과를 만지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등 기존 작품이 디지털의 옷을 입고 시민들과 만나는 거죠. 공개하자마자 반응이 정말 뜨거웠어요.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더라고요. <다니엘 뷔렌 개인전>에선 직접 도슨트 활동도 하신다고 해서 놀랐어요. 관장님께도, 관람객에게도 흔치 않은 경험일 듯해요.

1989년부터 큐레이터로 일을 시작했어요. 현장에서 관람객이 어떤 이야기에 반응하고 주목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기에 그 시간이 정말 소중하고 중요해요. 무엇보다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아요. 매번 다른 전시를 준비하기 때문에, 늘 새로운 긍정적 자극과 호기심이 발동하죠. 그리고 작가와 작품, 관람객을 이어주는 창이 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해야 해요. 이런 매력이 저를 계속 관람객 앞에 서게 만드나 봐요. 도슨트를 할 때마다 예약 인원의 두 배가 넘는 분들이 찾아와주셔서 감사한 마음과 책임감을 느껴요.

대구는 한국전쟁 당시 대구로 피란 온 예술가와 대구의 미술가들이 교류하며 더욱 풍부한 미술 사조를 일궈냈다.

“미술관은 소장품으로 이야기한다”라고 하셨는데, 대구미술관의 소장품 중 가장 애착이 가거나 선보이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대구가 낳은 가장 유명한 작가인 이인성의 작품들이죠. 작품이 시장에 나오면 수집하려고 노력해요. 저희에게 7점이 있었는데, 이번에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7점을 기증받아 총 14점을 보유하게 됐어요. 덕분에 전국에 있는 공공 미술관 중 이인성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 되었죠. 또 대구미술관은 유명 해외 작가의 작품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미술관이기도 해요. 해외 거장들의 작품을 잘 구비하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대구미술관에서 전시를 한 구사마 야요이, 장샤오강, 팀 아이텔 등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구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중요 작품과 전 세계 좋은 작품들을 균형 있게 수집해 미술관의 명성을 계속 넓히려고 해요.

최은주 관장이 부임한 후 3년 반 동안 대구미술관은 명성을 쌓으며 기증 작품이 늘고 있다.

대구미술관이 2011년 개관했으니 어느덧 10년이 넘었어요.

부임하고 3년 반 동안 해내고자 한 것들이 있어요. 창의적 전시를 위한 ‘전시 기획 회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수집 연구팀’의 활성화, 대구 미술과 대구미술관 그리고 이인성미술상을 아카이브하는 ‘아카이브 센터’ 창립이죠. 특히 20년이 넘은 이인성미술상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규모이면서 전시까지 연결된 프로젝트로, 대구의 미술가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발굴할 수 있고 현대미술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 매우 중요해요. 또한 이런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미술관의 ‘디지털 진화’를 위한 기틀을 마련해놨으니 이 작업을 멈추지 말고 향상성을 가지고 체계를 유지해갔으면 합니다.

3년 넘게 대구에서 생활하셨는데, 외부에서 바라볼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대구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구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느껴져요. 도시 안에서 유지되는 전통 요소가 많고, 현대미술에 대한 의욕도 굉장히 높아서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잘 조화시키는 도시예요. 예를 들어 작가 중에 종이를 다루는 단색화 화가인데 그 안을 파고 들어가면 옛 한지 장인들이 했던 전통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더라고요. 전통 철학으로 예술가의 자세를 한번 가다듬고 현대성을 추구해서인지 좋은 작가가 많이 배출되는 것 같아요. 전통을 무시하거나 저버린 현대성이 아니라, 전통을 기반으로 자신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걸 많이 발견할 수 있어요.

Maker's 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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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 최은주 관장이 제안하는 서양화가 이인성의 작품 3

‘사과나무’, 캔버스에 유채, 91×116.5cm, 1942

가지가 휠 정도로 풍성하게 열린 사과가 알알이 햇볕을 받아 고운 빛깔을 띠고 있는 작품.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을 기탁한 그림의 원소유주인 대구 명덕초등학교에서 2012년에 대구미술관에 재기탁했다. 대구의 상징성을 띤 사과를 사랑하던 이인성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 종이에 수채, 75x60cm, 1934

동경 유학 중이던 이인성의 수채화 기량이 가장 절정기에 달하던 무렵의 작품으로,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노란 옷을 입은 모델은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러 동경에 있었던 신여성 김옥순이다. 두 사람은 예술을 매개로 연애하며 훗날 결혼에 이른다.

‘풍경’, 캔버스에 유채, 44.5×51.5cm, 1930년대

고향의 소박한 일상을 표현한 수작으로 1930년대 중반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대구미술관이 기증받았다. 황금빛 들판 위쪽으로 우뚝 솟은 푸른 산, 그 사이 서너 채의 집이 고즈넉하고 서정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비교적 차분한 색채와 필치는 조선 향토색의 정서와 이미지를 보여준다.

  • 대구미술관 최은주 관장
    대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다
  • EditDanbee Bae, Jihyeon Moon PhotographYeseul J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