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치킨 연대기 대구 밥상 (1) | 박정배

탄탄한 사료를 기반으로 한 구성진 음식 이야기로 오랜 시간 독자와 만나온 칼럼니스트 박정배가 대구를 찾았습니다. 치킨과 분식, 붉은 국물과 내장까지 네 편의 연재로 대구 사람들의 밥상을 들여다봅니다. 잠시 숨을 고르세요. 읽는 것만으로도 얼큰하게 취할지 모르니까요.

K-치킨 연대기 대구 밥상 (1) | 박정배

K-치킨 연대기 대구 밥상 (1) | 박정배

탄탄한 사료를 기반으로 한 구성진 음식 이야기로 오랜 시간 독자와 만나온 칼럼니스트 박정배가 대구를 찾았습니다. 치킨과 분식, 붉은 국물과 내장까지 네 편의 연재로 대구 사람들의 밥상을 들여다봅니다. 잠시 숨을 고르세요. 읽는 것만으로도 얼큰하게 취할지 모르니까요.

코로나19로 3년간 중단된 ‘대구치맥페스티벌’이 2022년 7월 다시 열렸다. 대구의 치맥 페스티벌은 대구의 닭 문화를 기반으로 한 치킨 산업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상징적 이벤트다. 더운 대구는 감칠맛과 단맛과 짠맛이 어우러진 달보드레한 치킨과 시원한 생맥주로 행복해진다. 치킨과 맥주를 함께 먹는 행위를 뜻하는 ‘치맥Chimaek’은 2021년 10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K-드라마K-Drama·한류Hallyu·먹방Mukbang과 함께 등재되었고, 반도체나 K-팝처럼 수용자에서 선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22년 9월 25일자 <시사저널>에 따르면 “포털 사이트에 노출된 우리나라 치킨 점포 수는 6만5,000개에 달한다. 이 중에 프랜차이즈 치킨집은 전체 치킨 매장 중 41%를 차지하는 2만6,134개이며, 올해 9월 기준으로 공정위에 등록된 치킨 브랜드 수는 720개”다. 대구의 치킨점은 3,211개로 16개 광역시도 중 6위에 해당하는 규모. 숫자보다 중요한 건 대구발 치킨 문화가 치킨 산업이 태동하는 1980년대부터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다는 점이고, 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1971년 <전국 직업별 전화번호부>에도

대구의 ‘백마강’과 서울 명동 ‘통닭센터’의

대구 분점이 등장한다.

한국인의 통닭 외식

한국인은 닭을 통으로 먹어왔다. 현재는 부분육이 활성화되었지만 ‘닭은 한 마리’라는 인식은 여전하고, 대구에서는 닭을 한 마리 온전히 튀긴 ‘제사 통닭’도 판매하고 있다. 닭을 통째로 물에 끓여 먹는 ‘백숙’ 문화는 삼계탕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닭 문화가 외식으로 대중화된 것은 1960년대 초반에 달걀을 낳는 산란 닭과 고기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육계가 분리되면서다. 1965년 육용 전용 종계인 브로일러Broiler가 수입되면서 양계 산업이 본격화된다. 이때 외식으로서의 닭 문화는 “전기구이 통닭, 군침부터 삼키고 한 집 문을 열었을 때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도 없이 초만원이라 다른 집엘 갔다. 역시 만원이다”라고 쓰인 <신동아> 1965년 9월호 기사에서 알 수 있듯 전기구이 통닭의 시대였다. 1971년 <전국 직업별 전화번호부>에도 대구의 ‘백마강’과 서울 명동 ‘통닭센터’의 대구 분점이 등장한다. 대구는 한국전쟁 때부터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가장 적합한 닭의 생산과 유통의 중심지로 성장한다. 소나 돼지처럼 덩치가 크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가축보다 60일 정도면 먹을 수 있는 닭은 난리통에도 기를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튀겨 먹는 용도로 길러져 가슴이 큰 닭인 브로일러는 1971년 해표에서 식용유가 등장하면서 가마솥에 닭을 튀겨 먹는 ‘가마솥 통닭’ 혹은 ‘시장 통닭’으로 불리며 급성장한다.

통닭에서 치킨으로

1970년 일본에 상륙한 미국의 치킨 프랜차이즈 KFC가 큰 인기를 얻자 발 빠른 수입업자들이 압력 기름 솥을 수입해 팔기 시작한다. 음식의 명칭과 제조법이 바뀌면서 한국의 통닭이 치킨이 된, 그야말로 일대의 사건이다. 프라이드치킨 스타일이 국내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닭을 6조각으로 나누어 한 조각에 6백 원씩을 주고 파는 탓에 통닭 한 마리를 먹기가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신촌 주변 대학가에는 이 집들이 10m 간격으로 생겨나 일반 유흥업소에서까지 켄터키 치킨을 팔겠다고 나섰(1980년 10월 28일, <매일경제>)” 조각 닭이 인기를 얻자 “장사를 하는 입장에선 점포 임대료를 합쳐 1천만 원 내외의 소자본으로 가능하고, 비교적 수익성이 높기 때문에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 몇 집 건너 한 군데씩은 켄터키 치킨집이 퍼지(1981년 2월 4일, <매일경제>)”게 되었다.

전 세계를 석권한 공룡 KFC의 등장은

영세하고 동네 가게 수준의 한국 통닭 집들로서는 생계를 위협하는 현실이었다.

이때부터 대구를 중심으로
생존을 위한 토종의 반란이 시작된다.

적은 돈으로 손쉽게 창업해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조각난 닭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다. 1977년 한 백화점 식품부에서 만든 ‘림스치킨’은 대한민국 최초의 치킨 프랜차이즈다. 1984년 KFC가 정식으로 한국에서 영업을 시작하면서 대한민국은 프라이드치킨과 프랜차이즈의 시대로 돌입한다. 염지한 닭에 전분 가루를 입혀 찌면서 튀기는 프라이드치킨은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염분을 골고루 지녀 대중 외식의 왕이 되었다. 전 세계를 석권한 공룡 KFC의 등장이 영세하고 동네 가게 수준의 한국 통닭 집들로서는 생계를 위협하는 현실이었다. 이때부터 대구를 중심으로 생존을 위한 토종의 반란이 시작된다.

1985년 윤종계 씨가 대구의 계성통닭現 맥시칸치킨에서

양념치킨을 처음 선보인다.

출시하자마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구의 양념치킨과 토종 치킨, K-치킨의 선구가 되다

1985년 윤종계 씨가 대구의 계성통닭現 맥시칸치킨에서 양념 치킨을 처음 선보인다. ‘식으면 퍽퍽해지고 맛이 없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맛 양념인 마늘·양파·생강·고춧가루에 달달한 물엿을 넣은 양념 치킨이었다. 출시하자마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윤 씨는 당시에 “불도저로 돈을 밀었다”고 할 정도였다. 이런 인기와 같은 공간에서 생겨난 정보의 공유 덕에 대구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페리카나, 처갓집 양념통닭, 멕시카나 등이 생겨나고 프랜차이즈 사업에 성공하면서 전국에 양념치킨 열풍을 불러온다. 1990년 3월 23일 자 <동아일보>는 이런 인기를 “서구에 빼앗긴 우리 입맛 찾는다. 양념통닭 전국서 큰 인기”라는 기사로 다루었다. 

대구 서부시장의 통닭 골목.

하지만 단맛과 매운맛의 강한 조합을 선보인 양념치킨은 1990년대 이후 쇠퇴한다. 그 자리를 이어받은 것은 간장으로 은근한 감칠맛를 강화한 간장치킨이었다. <대구일보> 2021년 6월 16일 자 ‘프랜차이즈 치킨의 태동지 대구’에 따르면 간장 프라이드치킨은 1978년 ‘대구통닭’에서 비롯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 간장치킨을 대중화·산업화한 것은 교촌치킨이다. 교촌치킨은 날개 같은 부분육을 간장과 결합해 새로운 치킨 문화를 정착시켰다. 1991년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시작한 교촌치킨은 대구를 기반으로 성장한 뒤 전국구가 되었다. 교촌치킨, 호식이두마리치킨, 땅땅치킨, 별별치킨도 모두 대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구에서 본격화된 한국형 치킨은 매운맛과 간장의 감칠맛에 단맛이 더해진 풍부한 맛과 향의 양념, 다양한 전분의 튀김옷, 보드라운 작은 닭(10호닭)과 적당한 소금 간으로 전 국민의 기호 음식이 되었다.

2013년에는 대구의 치킨 산업을 바탕으로 대구치맥페스티벌이 시작된다. 민간 주도형 페스티벌은 2019년 135개 치킨 브랜드가 참여하고 100만 명 이상이 둘러보는 전국적인 축제로 성장했으며, 대구는 ‘치맥의 성지聖地’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얻었다. 토종의 반란에서 시작해 새로운 음식 문화와 산업이라는 황금알을 낳은 K-치킨K-Chicken의 출발점에 대구가 있다.

Illustration |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을 수놓는 치킨 테이블.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외부 기고문은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시선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정배

한·중·일 음식의 역사 문화를 연구하고 현장을 탐사한다. 글 전체에 거세게 몰아치는 사료는 읽는 이를 식문화사의 생생한 한가운데로 옮겨놓는다. <조선일보>에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결정적 메뉴’ 등을 연재했으며, 넷플릭스 <한우랩소디>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 자문 역할을 하거나 직접 출연하곤 한다. ‘국물아카데미’, ‘국수학교’ 등 음식 관련 강의 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 저서로 <만두, 한중일 만두와 교자의 문화사>와 <음식강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