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풀 대구의 합리적인 레이아웃 시티 보이 인 대구 (1) | 박찬용

도시와 브랜드가 작동하는 원리를 통계와 현상으로 짚어온 칼럼니스트 박찬용에게 대구 이야길 꺼냈습니다. “갈수록 더 재미있네요.” 취재 중인 그에게서 이따금 탄성이 전해져옵니다. 바쁜 걸음 사이 그를 끄덕이게 만든 대구의 면면을 6편의 연재로 전합니다.

파워풀 대구의 합리적인 레이아웃 시티 보이 인 대구 (1) | 박찬용

파워풀 대구의 합리적인 레이아웃 시티 보이 인 대구 (1) | 박찬용

도시와 브랜드가 작동하는 원리를 통계와 현상으로 짚어온 칼럼니스트 박찬용에게 대구 이야길 꺼냈습니다. “갈수록 더 재미있네요.” 취재 중인 그에게서 이따금 탄성이 전해져옵니다. 바쁜 걸음 사이 그를 끄덕이게 만든 대구의 면면을 6편의 연재로 전합니다.

대구 특유의 고밀도·고기능성 도시계획

“대구는 작아서 끝에서 끝까지 30분밖에 안 걸린다.” 나와 친한 대구 출신 친구는 틈만 나면 이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대구에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 친구 말고도 내가 아는 대구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대구를 “작다”고 했다. 그래서 대구에 처음 갔을 때 나는 무척 놀랐다. 대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제와 보면 그때 대구에서 온 사람들의 말에는 앞단이 생략되어 있던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서울에 비하면’이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잠시 거닐었을 뿐이지만 대구는 훌륭한 도시였다. 없는 게 없고 집적도가 높을 뿐이었다. 대구 특유의 고밀도·고기능성 도시계획은 걷기만 해도 느낄 수 있었다.

도시의 중앙역이 있다.

중앙역 근처에는
시청이나 도시의 가장 큰 시장이 있다.

그 주변으로
도시의 각 상업 시설과 번화가가 연결된다.

대구와 서울의 구도심 레이아웃

대구 시내의 구조 자체가 나에게는 아주 신선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익숙하면서도 신선했다. 나는 기억이 생긴 이후 평생 서울의 경부선 근방 지역권에 살았다. 그렇기에 서울 구도심의 레이아웃에 익숙하다. 그 익숙한 레이아웃과 대구 구도심 레이아웃은 큰 차이가 없다. 도시의 중앙역이 있다. 중앙역 근처에는 시청이나 도시의 가장 큰 시장이 있다. 그 주변으로 도시의 각 상업 시설과 번화가가 연결된다. 대구역 앞 귀금속 상가를 지나면 반월당역 근처 약령시장과 약령시장 옆 서문시장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진골목과 화랑 거리가 있다. 이런 곳들을 걷다 보면 계속 서울 시내의 골목들이 생각난다. 서울역에서 남대문시장으로, 남대문시장에서 시청으로, 시청에서 인사동으로, 인사동에서 종로3가 귀금속 골목으로, 귀금속 골목을 지나 광장시장과 동대문시장으로. 그 레이아웃과 큰 차이가 없다. 

이 사이를 걷다 보면 광역 교통망이 도시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대구를 비롯해 한국의 주요 번화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힙스터도, 경기도 아닌 중앙정부와 민간정부의 정책이다. 특히 교통정책. 대구역-동성로로 이어지는 대구 구시가지가 약간 주춤해졌다면 그 이유는 KTX 때문일 수 있다. 대구역은 규모를 확장시키기 어려워 KTX 정차역이 되지 못했다. 2004년 KTX 정차역이 되면서 동대구역 인근이 새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동대구역에 복합환승센터가 완성된 후 동대구역 인근 역시 대구의 주요 번화가 중 하나가 되었다.

한 세기를 사이에 둔 두 대구역

나는 동대구역과 그 옆 복합환승센터를 들여다보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며 대구의 합리성에 감탄했다. 일단 무리한 확장 없이 대구역에 KTX를 정차시키지 않은 것부터 합리적이다. KTX 정차역이 기존 대구역과 멀지 않은 동대구역인 점도 합리적이다. 그 결과 동대구역은 한반도 열차 역 중 이용객 수 2위(1위는 서울역)가 되었다. 열차 정차 순위는 서울역을 제치고 1위다. 흥미롭게도 일제강점기 대구역 역시 식민 치하 조선에서 가장 이용객이 많은 역이었다고 한다(대구근대역사관에 쓰여 있다). 대구역 근방은 100여 년 전 교통 허브였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동대구역이 그 자리를 완벽하게 대체한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대구에 어떤 연고도 없고
호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그래도 도시의 레이아웃 설계 면에서는

대구가 한국 최고 수준이라고 본다.

대구 도시계획의 합리성은 한국의 다른 대도시와 비교해보면 두드러진다. 서울은 이제 너무 커져서 상업 허브나 행정 허브, 주요 의료기관 등을 오가는 일이 쉽지 않다. 주말에 은평구에서 출발해 송파구 결혼식에 간다면 제주도 왕복과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부산은 더 어렵다. 부산역 근처의 구도심, 금융 허브, 시청과 법원, 서면, 고급 주거지역인 해운대, 산업 시설이 몰린 울산과 거제 등은 모두 서로 움직이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에 비하면 대구는 주요 벨트 간 이동이 굉장히 합리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나는 대구에 어떤 연고도 없고 호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그래도 도시의 레이아웃 설계 면에서는 대구가 한국 최고 수준이라고 본다. 

이 도시가 지닌 미묘한 자신감

그래서인지 대구에서는 인구가 줄고 산업구조가 바뀌는 시기를 겪으면서도 묘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 자신감은 미묘한 것이기도 하고 ‘C.P.컴퍼니 매장 매출 전국 1위’ 같은 소문이기도 하며 실질적 수치기도 하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Krystian Zimerman도 대구에 공연을 온다. 요즘 떠오르는 젊은이들의 미식 장르인 일본 라멘집 역시 대구에서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대부분 수준도 높다). 요즘 전국 광역도시의 고민 중 하나는 뛰어난 젊은이들이 서울로 떠나는 걸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구는 젊은이들이 어느 정도 계속 머무르는 걸로 알고 있다.

한 도시를 국가라 친다면

대구역이 김포공항처럼 국내선 터미널 역할을,

동대구역은 인천공항처럼 국제선 터미널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다시 대구역 앞을 생각한다. KTX는 대구역을 벗어나 동대구역에 서고 앞으로 서대구역에도 정차할 예정이다. 그러면 대구역은 완전히 쇠락하는 걸까. 그렇지 않으며, 바로 그게 도시로서 대구가 지닌 신비로운 점이다. 대구역은 고속철도가 전혀 정차하지 않는 역 중 승객 수가 전국 2위다(1위는 천안역). 대구역이 구미, 왜관, 김천 등 대구의 위성도시에서 오는 철도 허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 도시를 국가라 친다면 대구역이 김포공항처럼 국내선 터미널 역할을, 동대구역은 인천공항처럼 국제선 터미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른바 지방 소멸이 전국적 화두다. 나는 지방 소멸의 이유 중 하나로 매우 훌륭한 고속철도 시스템을 꼽는다. 한국의 고속철도는 세계 수준에 비교했을 때 너무 훌륭하고 너무 저렴한데(스위스나 일본에서 한번 타보시라) 모든 철로는 서울로 수렴한다. 엘리트든 최고급 농산물이든 서울로 몰릴 수밖에 없는 교통망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시 단위 행정가의 역량이 해당 지역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다. 대구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대구의 슬로건인 ‘파워풀 대구’역시 이런 자신감의 반영 아닐까. 외지인 입장에서는 ‘슬로건이 왜 저래’ 하며 흠칫 하다가도 ‘역시 대구는 이런 곳인가···’ 싶어진다. 대구에는 그런 매력이 있다.

Illust | 대구의 택시 정류장 안내판에 새겨진 ‘파워풀 대구’

**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외부 기고문은 지역의 문화와 산업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시선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에디토리얼 디파트먼트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찬용

<아레나 옴므 플러스ARENA HOMME+> 피처 디렉터. 사람과 돈, 브랜드, 도시의 향방을 관찰해 페이지의 레이아웃으로 만든다. <요즘 브랜드>, <잡지의 사생활>,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첫 집 연대기>를 출간했고 <요즘 브랜드 2>를 쓰고 있다.

  • 파워풀 대구의 합리적인 레이아웃
    시티 보이 인 대구 (1) | 박찬용
  • EditMijin Yoo IllustrationThibaud Herem